영화 폭스캐처(Foxcatcher, 2014)

레슬링 선수 마크 슐츠는 88년 서울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하지만 몸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것 같아 괜히 초조하다. 더군다나 마크를 코치해 주는 친형 데이브 역시 레슬링 선수이고 금메달까지 따서 유명했기 때문에 동생 입장에서는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던 중에 존 듀폰이라는 사람의 비서에게 연락이 온다. 존이 마크를 직접 만나서 의논하고 싶은 게 있다면서 폭스캐처 농장으로 와준다면 여행 준비를 알아서 해주겠다고 말했다. 무슨 사항에 대한 의논인 줄도 몰랐지만 마크는 일단 존의 뜻대로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에서 내려 헬기까지 타고 들어가 대저택에 도착한 마크는 존에게서 자신의 레슬링 팀 “폭스캐처”에 합류해 올림픽 준비를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믿기지 않는 파격적인 대우 역시 포함되어 있었고, 그의 형 데이브도 함께 와주길 바랐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라 합류하기로 마음을 먹고 데이브에게도 함께 하자고 말하지만, 가족이 있고 이제 막 정착을 한 형은 동생에게 행운을 빌어줄 뿐이었다.

그렇게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 폭스캐처 팀에서 훈련을 시작한 마크는 이내 적응을 하고, 낯설었던 존과는 신뢰를 바탕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관계에 점점 금이 가기 시작해 훈련에까지 지장을 주게 됐고, 존이 데이브까지 불러들이면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엔 재능 있는 선수를 위한 단순한 후원인 줄 알았다. 재벌 상속자인 존이 딱히 하는 일이 없어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건지도 모르겠다. 커다란 저택에서 살면서 잔디가 깔린 어마어마한 들판 같은 정원을 소유하고 있고 헬기와 전용기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돈이 넘쳐흘러 쓸 데가 없었을 텐데, 이왕 쓸 바에 올림픽에 나갈 선수들을 후원하고 금메달을 따내 명예를 드높이고 싶었던 거라 생각했다. 그 계획에 안성맞춤이었던 선수가 마크였다. 재능 있는 형의 그늘에 가려 뛰어넘을 수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가지고 있었으니, 부유한 존이 아낌없이 후원해 준다면 금메달을 딸 수 있을 터였다.
마크의 입장에서도 존의 후원은 절호의 기회였다. 영화 초반 장면과 그가 사는 모습을 보고 나니 그리 여유롭지 않아서 오로지 운동에만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존이 데이브와 함께 오라고 했고 거절한 이후에도 다시 그것에 대해 언급하는 게 뭔가 있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딱히 무슨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마크가 운동에 관해 도움을 받았던 선수와 코치의 관계는 데이브에서 존으로 바뀌게 됐다. 존은 그저 운동하기 좋은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로만 예상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관여하는 모습을 보며 그 정도의 전문 지식이 있나 싶어 조금은 의아했다. 영화가 조금 지나고 나서 훈련은 마크를 포함한 폭스캐처 팀이 자유롭게 하는 편이었고, 존은 마크를 심리적으로 트레이닝 시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둘 사이에 돈독한 우정 비슷한 것이 쌓여갔지만 그건 금세 허물어질 모래성이나 다름없었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 및 개인적인 생각을 포함하고 있음

존은 기본적인 관계에 결핍이 있는 사람이었다. 물질적으로 가질 수 있는 건 다 가졌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누군가와 인간적인 유대나 감정적 공유로 이어지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결혼을 하지 않은 듯했고 가족이라고는 어머니가 계시긴 했는데 같은 공간에서 살갑게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다. 처음엔 존의 비서가 마크에게 주의를 주면서 어머니에 대해 말하길래 좀 예민한 사람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이후에 존과 어머니가 마주 앉아 대화하는 모습과 보여주기식 행동을 하는 장면을 보며 관계의 결핍이 어머니 혹은 가족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존은 무엇을 해도 어머니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던, 키우는 말보다 못 한 아들이었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관계가 형성됐기 때문에 성인이 되고 나서도 존은 누군가와 평범한 관계를 맺을 수 없었던 것 같았다. 표면적으로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일적으로도 문제가 없었지만, 그 이상의 애착 관계가 형성된 후에 조금이라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면 견딜 수 없어 하는 듯했다.
마크와의 관계가 그랬다. 처음엔 그와 친밀감을 잘 쌓아갔지만 결핍에서 비롯된 성격의 결함은 이내 두 사람을 틀어놓고 말았다. 존은 마크에게 친구라고 말할 때는 언제고 본인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난데없이 욕을 하며 차갑게 돌아서는 감정의 기복을 보였다. 마크의 입장에서는 후원자이긴 했으나 대외적으로는 멘토라든지, 아버지 같은 사람이라고 강요된 관계에 점점 회의를 느낀 것이라 생각됐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계기는 데이브를 폭스캐처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가지 않겠다고 말했던 데이브를 회유한 게 무엇이었을지 마크는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괜히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형의 존재 덕분에 마크는 심적으로 의지할 데를 찾아 불안한 상황을 맞닥뜨려도 그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넘기게 된다.
그러나 형제라서 깊은 애착으로 형성된 선수와 코치라는 두 사람의 관계를 본 존은 심사가 뒤틀려 아마도 마크를 데이브에게 빼앗겼다고 느꼈던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지금 당장 필요한 게 뭔지 아는 관계, 때로 의견이 맞지 않아 언쟁이 벌어질 때도 있지만 금세 회복할 수 있는 관계가 존에게는 없었다. 어머니와의 관계부터 그랬고, 한때 친구라 여겼던 사람 역시 돈 때문에 자신의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그 누구와도 진정한 유대를 맺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타인과의 관계는 가지지도 못하고, 가질 수도 없었던 존의 표정이 내내 텅 비어 보였던 것은 바로 그런 연유였다. 삶을 채워주는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존은 중년의 나이였지만 어린아이와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잘한다는 인정을 받으려고 눈치를 봤고, 무언가를 사면서 빠뜨린 것에 대해 가져오라며 떼를 쓰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마크가 자신의 곁을 떠나게 된 게 데이브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를 총으로 쏘기까지 했다.
어쩌면 존에겐 마크가 스스로 형성한 최초의 인간관계가 아니었을까 싶다. 돈을 받고 친구가 되어준 아이나 업무적으로 형성된 관계 외에 자신의 의지로 선의를 베풀고 그 나름의 유대를 가졌던 사람이었다. 그런 관계에 익숙하지 않아서 존의 행동은 너무나 일방적이긴 했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아마 최선이었을 것이다. 본인은 관계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을 텐데 돌아오는 건 기대와는 다른 반응이었으니 존의 입장에서는 뒤늦게 불러온 데이브의 탓이라 여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 영화도 봐야지, 봐야지 해놓고 자꾸만 미뤄뒀던 작품이다. 왠지 좀 무거울 것 같아서 손이 안 가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보기 시작하면서는 조용히 흐르는데 왠지 모를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감정을 대사나 몸짓보다는 표정과 눈빛으로 보여줘서 후반에는 조마조마했었다. 관계의 결핍으로 인해 사회성이 결여된 한 남자의 행동이 불러온 비극이 실화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괴물 같은 존이 그렇게 된 게 선천적인 건지 아니면 후천적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엔 이렇게 조용하게 무서운 사람도 있구나 싶어서 섬뜩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불안함을 느끼게 한 데에는 존 역할을 맡은 스티브 카렐의 공이 컸다. 내게는 웃긴 캐릭터로 익숙한 배우인데 공허한 무표정에서 미세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은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연기를 너무 잘해서 이 영화를 통해 당연히 상을 탔겠거니 싶어서 찾아보니 여러 영화제 후보에는 올랐어도 수상은 거의 하지 못했다. 이 연기에 상을 안 주고 대체 누구에게 줬는지 보니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에디 레드메인이었다. 2015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는 모두 연기가 미쳤는데 그중에서 가장 미친 연기를 보여준 사람에게 줬나 보다.(인정!)
스티브 카렐 외에 헐크로 익숙한 마크 러팔로는 안정적이면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고, 채닝 테이텀은 기대 이상의 모습이었다. 마초남 이미지를 별로 안 좋아해서 본 작품이 거의 없는데 새삼 다시 봤다.

 

영화 폭스캐처(Foxcatche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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