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2007)

1978년 테헤란.
어린 마르잔(마지)은 아디다스와 이소룡을 좋아했다. 아무런 걱정이 없었고 즐겁기만 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슬람 혁명이 성공을 거둔 뒤 사람들은 살기가 힘들어졌다. 공산주의자 삼촌은 정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다 겨우 풀려났고, 길에서 어린아이들이 죽는 걸 예사로 목격했다. 폭격이 일어나 한밤중에 건물이 무너져 사람들이 죽는 일 또한 일어난다. 여자들은 나이가 많건 적건 무조건 히잡을 써야 했고, 분리 정책으로 남녀공학이 금지되었다. 도로를 지나는 사람을 붙잡아 집에 술이 있는지 불시에 검문을 하는 일까지 일어나 개인의 자유가 없다시피 했다. 마르잔이 좋아하는 펑크록이나 서양 문화는 언급조차 해서는 안 되었다. 딸의 안위와 교육을 걱정한 부모는 빈에 있는 학교로 마르잔을 편입시켰다.

빈에서 유학을 하게 된 마르잔은 이란에서 살 때보다 자유로워졌지만, 출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차별 어린 시선을 받아내야만 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마르잔은 자신을 프랑스인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낀다. 테헤란이나 빈이나 삶이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였기에 마르잔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이란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라는 걸 알지 못하고 보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되도록이면 줄거리 외에 다른 정보 없이 보는 걸 선호하는 편인데 소개된 줄거리조차 두 줄뿐이었고, 제작 국가가 프랑스라서 당연히 그 나라 영화인 줄로만 알았다. 히잡을 쓴 소녀가 주인공이라 프랑스에 사는 이슬람 소녀 정도로만 예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이란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곳에서 살던 평범한 소녀가 어떤 변화를 마주하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마르잔은 아이였기에 정치, 사회 상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구호를 무턱대고 따라 했고, 감옥에 갔다 온 삼촌이나 아빠에게서 이야기를 들어도 논지를 파악하지 못했다. 어렸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었다. 그것보다 마르잔의 반항기를 부추긴 것은 듣고 싶은 음악을 밖에서는 들을 수가 없다는 것과 옷차림새에 대한 사람들의 간섭, 그리고 학교에서조차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교육을 받는 게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여성의 인권이 바닥에 떨어져 믿을 수 없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마르잔과 함께 마트에 다녀오는 엄마에게 모르는 남자가 히잡을 똑바로 쓰라며 반말로 권위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었다.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은 이슬람 혁명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마르잔의 엄마는 남자에게 쏘아붙이지만, 이후 세월이 흘러 빈에서 테헤란으로 돌아온 마르잔이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대처하는 모습을 통해 이미 여성에게 주체적인 인권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예 나이가 어리거나 아니면 엄마 세대 이후의 어른이라서 정세를 알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받아들였을 텐데, 마르잔은 이미 외국의 문화를 접해 선호하고 있었으며 한창 사춘기 때라 반항하고 싶은 욕구가 넘쳐흘러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았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학교에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우려하는 게 당연했다.

마르잔은 유학을 떠난 덕분에 개인의 자유를 얻게 됐지만 다시금 고향에서의 억압과 비슷한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게 된다. 혁명과 전쟁을 겪은 마르잔을 바라보던 친구들이나 바에서 만난 낯선 타인에게도 출신에서 오는 선입견이 존재했다. 테헤란에서와는 다르게 히잡을 쓰지 않고 남자 친구들과 어울리며 담배나 대마초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등의 온갖 자유를 얻었지만, 마르잔은 여전히 무언가로부터 얽매여 있었다.
이 부분은 마르잔에게 유독 가혹하게 보이긴 했지만, 세계 어느 곳이나 비슷하게 시선에서 오는 억압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인종, 문화권의 나라로 여행을 떠난 사람이든, 남자나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부터든, 하다못해 신체적 특징까지도 다르게 보이는 모든 시각적인 부분에서 억압, 또는 호기심이나 관심을 받게 된다. 다른 것뿐인데 틀리다고 여기는 시선 속 편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마르잔은 정체성이나 삶에 대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된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이곳에서도 이방인 취급을 받는 현실이 암담했다. 그러다 결단을 내려 테헤란으로 돌아가지만, 마르잔이 떠나왔을 때보다 상황은 더 심각해져 있었다. 특히나 여자로 사는 일은 더욱 캄캄했다.
마르잔이 유럽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개방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 한 명이 내는 목소리로 세상을 바꾸기엔 더없이 어려웠다. 그래서 마르잔이 자연스레 동화되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체념은 사람의 의지를 무력화시키는 데 가장 큰 힘을 발휘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도 만들어버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질책 어린 말 덕분에 정신을 차리는 걸 보며 그래도 마르잔의 내면에는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굳건한 의식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마르잔은 이란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 여자로 한 나라를 바꿀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인권을 유린당하는 여자로 고향에서 사는 것보다 자유 대신 차별 어린 시선을 받는 외국에서 사는 게 훨씬 나은 삶이었다.

이란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몰랐고 최근에 미국과 사이가 안 좋다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이 영화 덕분에 아주 조금은 알게 되었다. 정치적 혼란을 어린 소녀의 눈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신선했다. 다른 나라 문화,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자유로웠던 아이가 범국가적인 억압을 겪고, 또 타국에서마저 자신을 향한 시선조차 일종의 편견이 씐 억압을 경험하면서 무언가를 포기하게 되는 과정이 사무치게 씁쓸했다. 인간에게 자유라는 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됐다.

실사와 헷갈릴 정도의 애니메이션이나 동화처럼 예쁜 작화, 행복하고 따뜻한 애니메이션이 익숙해져 있던 내게 이 영화는 여러모로 낯설었다. 하지만 흑백 만화가 보여주는 이야기에 작화가 잘 어울렸다는 생각이 든다.

낯선 나라를 배경으로 사회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영화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더럭 겁이 났지만, 한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는 여정에 집중해서 보여준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하며 볼 수 있었다.

 

영화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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