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1976)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제대한 트래비스는 불면증에 시달린다. 시간을 죽일 바에야 돈이나 벌자 싶어서 택시 운전을 하며 밤새 어두운 거리를 돌아다니지만, 근무가 끝난 뒤에도 쉽게 잠이 들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집으로 가는 대신 포르노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시간을 때우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트래비스는 팔렌타인 대통령 선거 캠프에서 일하는 베시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천사처럼 아름다운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다짜고짜 선거 캠프로 향한 트래비스는 운 좋게 데이트의 기회를 얻는다.
한편, 한밤중에 자신의 택시에 올랐다가 웬 남자에게 끌려간 어린 창녀 아이리스가 자꾸만 마음에 걸린 트래비스는 그녀를 찾아 나선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 및 개인적인 생각을 포함하고 있음

트래비스가 잠을 못 자는 이유는 그가 지칭하는 인간 쓰레기들 때문이었다. 늦은 밤 길거리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매춘부나 게이, 마약 중독자, 강도 등의 모든 사람이 트래비스의 눈에는 없어져야 할 쓰레기로만 보였다. 이후 트래비스는 밤거리를 헤매는 그들과 택시를 운전하며 밤에 도로를 돌아다니는 자신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고, 택시에 흑인이 타는 것을 상관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타인의 시선으로는 그들과 자신이 별다를 것 없는 인생처럼 보일 테지만 실제로는 다르다며 선을 긋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건 트래비스의 선입견이었다. 그는 한밤중에 택시를 운전한다는 사실 하나만 보고 자신에게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트래비스는 길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전혀 알지 못할 텐데도 스치듯 본 그들의 인생은 쓰레기라고 치부해버렸다.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다.

그렇게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트래비스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아가는 두 여자를 만난 건 기막힌 인연이었다.
베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녀가 누구의 손에 닿을 수 없게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트래비스는 스스로 기사를 자처했다. 베시와의 첫 데이트 자리에서 같은 캠프의 남자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깎아내리고선 자신과는 무언가 통하는 게 있다며 확신했다. 타인의 의사 따위는 상관없고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믿었다. 베시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사는 아이리스는 트래비스의 눈에 쓰레기로 보여야 마땅했다. 하지만 세상에 찌든 어린 소녀의 얼굴이 마음 한켠에 남았다. 그래서 다시 마주쳤을 때 택시로 뒤쫓아가며 지켜보는 행동을 했다.
트래비스에게 베시는 지향하는 세계였다면 아이리스는 외면하고픈 양심처럼 보였다. 베시의 아름다운 외모에 먼저 반하긴 했지만,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려는 사람을 위해 일하는 자리는 길거리를 방황하는 택시 드라이버인 자신과는 달랐기 때문에 그녀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아이리스를 내버려 둘 수 없었던 이유는 인간 쓰레기라 지칭하는 사람들과 자신은 다른 존재라고 단언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리스를 거리에 그냥 둔다면 쓸어버려야 할 그들과 자신이 같은 부류로 취급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행동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일말의 양심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들과 만나면서 트래비스의 모순적인 모습이 이상한 데서 나타났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 데이트에 베시를 포르노 극장에 데려가선 사람들이 많이 보는 영화라 괜찮다고 말하는 것과 아이리스에게 포주가 속이고 있는 거라며 이런 일을 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차비를 주겠다고 하는 행동은 완전히 달라 일관적이지 않았다. 포르노와 매춘은 다르긴 해도 성(性)을 상품화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같은 범주 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통 알 수 없는 사람임에 분명했다.

그 후에 베시에게 외면당하다 나중엔 무시를 당하고, 아이리스 역시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포주 옆에 남기로 결정하면서 트래비스의 분노가 타오르고 말았다. 총을 구입하고 신체 단련을 하는 트래비스는 베트남 참전으로 인해 자신이 이런 인생을 살게 된 거라고 생각했다. 젊은이들을 전쟁에 내보내는 결정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었는데, 접근조차 할 수 없는 현재의 대통령이 아닌 자신의 택시에 탔었던 팔렌타인을 저격하는 게 더 쉬워 보였다. 하지만 특이한 헤어스타일로 나타나 누가 봐도 의심스럽게 행동했기에 실패하는 게 당연했다. 꽁지가 빠지게 도망친 그는 두 번째 계획이었는지 아니면 우발적이었는지, 아이리스에게 매춘을 시키는 일당을 모조리 소탕하려고 무턱대고 들이닥쳤다가 성공하여 영웅으로 거듭났다. 어찌 됐든 그토록 욕하던 인간 쓰레기를 쓸어버린 셈이었다.

트래비스의 굉장한 선입견과 아집을 보고 있으니 도스토옙스키가 쓴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가 생각났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영웅을 자처했던 사람이었다.(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가물가물하지만..)
엄중한 잣대를 남에게만 들이대며 자신은 다르다고 자부하던 트래비스는 정말이지 특이한 캐릭터임에 분명하다. 전쟁이 남긴 트라우마가 여태껏 접하지 못했던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고, 가족과 동료를 포함해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혹은 스스로 거부한) 외로운 삶에 대한 분노일지도 모르겠다.

1976년에 제작된 본 영화는 13년이나 지나서야 국내에 처음 개봉했다. 나는 당시에 어린 나이였으니 당연히 못 봤고, 2008년에 재개봉을 했다는 것조차 몰랐기 때문에 역시나 보지 못했다. 너무나 유명한 영화인데 황금종려상을 탔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모습이 익숙한 로버트 드 니로가 첫 주연을 맡은 작품이고, 조디 포스터가 데뷔한 영화라고도 한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를 많이 보진 않았지만 최근에 본 영화가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내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영화 역시 괜찮은데 나한테는 별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있게 봤다. 재미있다는 표현이 영화에 어울리진 않지만, 트래비스라는 캐릭터가 모순적인 면이 많아서 흥미로웠고 결말도 예상과는 달라서 인상적이었다. 50년 가까이 된 영화인데 영상 기법이 굉장히 세련됐고 음악 또한 내용에 잘 어울리게 사용해서 놀라웠다.

역시 명작이라 불리는 영화는 다르구나 싶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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