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택트(Contact, 1997)

어려서부터 엘리는 누군가의 답을 기다리며 무전 교신을 하곤 했다. 대부분은 답이 없었지만 때로 멀리 사는 낯선 사람의 답을 듣게 되면 그렇게 즐거워할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낯선 누군가와의 교신에 관심이 많았던 엘리는 성인이 된 후, 지구 너머에 지성을 가진 존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과학자로 살게 된다. 그래서 후원을 받아 우주에 떠도는 신호를 탐색하지만 오래 매달려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가능성 없는 연구에 후원이 끊겨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지만, 다행히 새로운 발견에 관심이 많은 후원자를 통해 미지의 존재에 대한 탐색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러다 정부 기관으로부터 빌린 장소에서 곧 철수를 앞둔 어느 날, 그토록 오래 기다려온 신호를 포착한다. 베가성에서 보내온 메시지를 받아 음성과 영상을 분석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것이 엘리를 또 다른 모험으로 이끌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지구 너머에 지성을 가진 존재가 있다고 믿는 한 과학자의 이야기라 영화의 방향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초반부터 예상할 수 있었다. 외계 생명체를 발견하는 일을 그렇게 쉽게 이루게 할 수 없었으므로 엘리에겐 당연히 온갖 사건이 일어났다. 믿고 있던 후원이 중단되어 다른 후원자를 찾아 나서야 하는 어려움의 과정과 그렇게 후원을 받았음에도 진척이 없어 불안한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졌다. 너그러운 후원자 덕분에 몇 년 동안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지만 이내 철수해야 할 상황까지 맞닥뜨렸기 때문에 어떤 실마리라도 잡아야 했다.

그렇게 위기에 도래했을 때 마침내 무언가를 발견해 결과물을 세상에 공표하면서 엘리는 또다시 여러 어려움을 맞닥뜨린다.
보면서 가장 열이 받았던 건 학계의 드럼린 때문이었다. 그는 영화 초반에 새로 탐색을 시작한 엘리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이라며 후원을 중단했었다. 드럼린의 그 주장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엘리가 꽤 오랫동안 탐색을 했을 텐데 뚜렷한 성과를 내놓지 못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엘리가 지적 생명체를 발견하면서 드럼린이 슬금슬금 발을 담그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엘리의 공을 가로채는 짓까지 한다. 몇 년 동안 엘리가 노력한 결과물을 학계의 높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빼앗은 셈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나중엔 미지의 존재를 만나는 1인에도 욕심을 내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어찌나 밉상이던지 그렇게까지 하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지의 존재를 발견한 후 그를 만나러 가기 위한 과정에서 엘리는 이전에 등장한 신과 과학 사이의 물음에 놓이게 됐다.
영화 초반 등장한 팔머는 엘리를 만나 호감을 품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그는 신부가 되려고 했던 사람이라 그 누구보다 과학적인 엘리와 사고 자체가 맞지 않았다. 그래서 팔머와의 인연은 초반에 끝이 났는데 어떻게든 만날 운명이었기 때문인지 지적 존재를 발견한 이후 재회하게 된다. 엘리를 너무 잘 알았던 팔머는 중요한 청문회에서 그녀가 할 수밖에 없는 대답에 관한 질문으로 평생을 염원하던 엘리의 꿈을 꺾고 만다. 팔머는 엘리를 향한 애틋한 마음 때문에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후 영화에서 그 질문이 중요한 논점이 됐다.

엘리가 과학과 수학이라는 학문에 빠질 수 있었던 건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논리적이고 확실한 답이 있다는 점에 사로잡혔는데, 신은 그와는 반대로 증명할 수가 없었다. 존재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부터가 비과학적이었기에 엘리는 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엘리의 엄마는 그녀를 낳자마자 돌아가셨고, 자신을 그토록 아끼고 사랑해 주던 아빠 역시 9살 때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믿으려야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과학적 사고와는 별개로 환경 자체가 신을 믿을 수 없게 만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엘리가 갖은 어려움 끝에 지적 외계 생명체를 만나고 난 후, 그녀의 경험이 실제였다는 걸 증명해야 됐을 때 이 영화의 주제를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과학적인 방법으로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엘리의 기억은 사람들 앞에 내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말하듯 신의 존재 또한 증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과학적 경험에 대한 믿음,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서로 대립될 수밖에 없는 것인데 이렇게 잘 어우러지고 아름답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엘리와 팔머 각자가 서로의 믿음에 대해 이해를 하는 모습까지 따스하게 그려졌다.

나는 23년 전에 개봉한 이 영화보다 2017년에 개봉한 <컨택트(Arrival)>가 더 익숙하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 영화를 그해 베스트 중 한 작품으로 뽑았을 만큼 워낙 인상적으로 봤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점은 원제 을 굳이 바꿨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97년 작 <콘택트>와 헷갈리게 만든다.

아무튼, 원제는 다르지만 한국 개봉 제목은 같은(“컨”이나, “콘”이나.) 이 영화를 뒤늦게 찾아보게 됐다.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에 개봉한 영화들이 워낙 좋다는 걸 최근 직접 보고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라 궁금했다. 제목은 많이 들었어도 정작 무슨 내용인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예측을 했지만 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SF 장르에서 종교적인 이야기를 꺼내고 반대로 과학적인 경험을 증명하라며 엘리의 허를 찌르는 장면을 보며 이런 주제를 이렇게 다룰 수도 있구나 싶어서 놀라웠다. 가만 보면 서로 사고하는 방식이 달라 대립할 수밖에 없는 과학과 종교인데 유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전개가 정말 좋았다. 장르 영화를 말할 때 괜히 언급되는 작품이 아니었다. 역시 90년대 영화답게 좋았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과학 저서 <코스모스>로 유명한 칼 세이건의 소설이 원작이라고 하니 나중에 꼭 읽어봐야겠다.

 

 

영화 콘택트(Contact,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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