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오스 워킹(Chaos Walking, 2021)

 

 

2257년 뉴 월드.
사람들은 생각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노이즈”에 감염됐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목소리로 들리거나 영상화할 수 있었다. 훈련을 통해 생각을 감추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마음을 감추는 게 어려웠다. 그래서 누군가를 향한 적의나 호의를 명쾌하게 알 수 있었다. 남자들은 전부 노이즈에 감염되어 생각을 읽을 수 있었으나 기이하게 여자들은 전혀 감염되지 않아 마음을 알 수 없었다.
1차 이주민이 자리를 잡았을 때 뉴 월드 행성의 원주민 스패클과의 전쟁으로 인해 여자들이 전부 몰살당했고, 토드의 엄마도 그때 돌아가셨다. 그 이후 프렌티스타운에 여자들은 존재하지 않게 됐다.

넬, 킬리언 아저씨와 농사를 지으며 사는 토드는 헛간에 도둑이 든 걸 보고 쫓아갔다가 우주선을 발견한다. 마을의 시장인 데이비드를 존경하고 그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가득했던 토드는 곧장 그에게 가서 알린다. 토드는 헛간에 든 도둑이 난생처음 보는 여자라는 존재임을 알고 깜짝 놀라며 신기해한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우주선을 타고 온 그녀로 인해 자신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머나먼 미래, 아마도 지구에서 이주민이 가서 정착했을 뉴 월드라는 행성이 배경이라는 점과 여자는 존재하지 않고 남자만 살아남은 곳에서 생각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일종의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설정이 굉장히 신선했다. 말로 하는 생각은 목소리처럼 바깥으로 흘러나왔고 상상하는 것들은 이미지화되어 일종의 환영처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곳에는 비밀이 없었다. 데이비드 정도 되는 사람만이 생각을 감출 수 있었고, 그 외에 다른 보통의 사람들은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를 써야만 했다. 아직 어린 토드 또한 생각을 감추는 게 너무나 어려워서 자신의 이름만을 계속해서 되뇔 뿐이었다.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남자들만 존재하는 곳에 우주선을 타고 온, 생각을 읽을 수 없는 여자 바이올라가 나타나자 모두들 놀라고 신기해했다. 토드 역시 마을의 여느 남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바이올라가 타고 온 모선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듣고는 지레 판단하여 그들보다 앞서 우주선을 덮치기로 했다.
문제는 바이올라가 데이비드의 계략을 다 들어버렸다는 데에 있었다. 그리고 토드는 그녀를 처음 발견해 위험에 빠지게 했다는 생각 때문에 바이올라의 도주를 돕기로 했다. 물론 그녀가 예쁘고 목소리도 듣기가 좋았다는 이유도 조금은 있었다.

영화 속 설정을 보여주고 이후 여자들이 어떻게 됐는지까지 모두 밝혀진 초반에 비밀을 모두 간파해버렸다. 배우는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며 많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매즈 미켈슨은 불쌍하거나 악당이거나 둘 중 하나의 이미지로만 각인된 탓에 그가 이 영화의 악역이라는 걸 등장할 때부터 알 수 있었다. 혼자만 튀는 털옷을 입은 것만 봐도 권력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게 팍팍 느껴졌기에 더욱 확신했다.
중요한 건 그가 악당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데이비드와 수하들에게서 도망을 쳐서 모선에 연락할 방법을 찾아야 했던 토드와 바이올라였다. 생각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토드와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바이올라의 동행이 처음엔 낯설었고, 조금 지나서는 토드가 불안해했다. 바이올라의 생각을 전혀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 하는 토드를 믿으며 그를 안심시켰다. 그 이후 둘 사이에 존재하던 경계심이 조금은 허물어져 목적을 향해 움직였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다른 마을로 이어져 진작에 알고 있던 비밀이 어마어마한 것이라도 되는 양 밝혀졌고,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해 마지막 결전을 벌이는데 너무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다. 환영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그렇게 겁을 낼 이유가 있었을까 싶다. 진정한 악역이라면 그런 것쯤은 가뿐히 무시해야 됐는데 데이비드 캐릭터에 정체성이 없었다.
악역에 큰 힘이 없다 보니 선한 역할인 토드와 바이올라에게도 큰 매력이 없었다. 두 사람은 그저 도망가는 데에만 급급했는데, 이 와중에 토드는 바이올라가 신기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본능 때문인지 생각이 다른 쪽으로만 흘러갔다. 처음엔 그게 좀 웃기긴 했으나 생각이 자꾸만 바깥으로 드러나다 보니 바이올라의 입장에서는 좀 불쾌했을 것 같다.

결국 이 영화는 여자애 하나를 잡겠다고 수십 명의 남자들이 쫓아간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여자애의 등 뒤에는 엄청난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언급되긴 했으나 그게 바이올라를 잡아야 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었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는 걸 알고 있었고, 영화를 재촬영했다는 사실 또한 알고 감상했다. 재촬영을 한 영화들은 대부분 평이 안 좋기 때문에 기대를 하지 않고 봤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내용이 없었다. 비밀 따위는 진작에 알아채버려서 쫓고 도망가는 게 내용의 전부였다. 설마 영화를 소설처럼 3부작으로 만들 예정인가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용이 없다는 건 차치하고 세계관이 너무나 아깝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막상 시리즈로 만든다고 한다면 별 기대가 안 돼서 볼 생각이 없다는 게 좀 모순적이긴 하다. 아무래도 시작이 별로 좋지 않아서 시리즈로 제작될 것 같진 않다.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답게 비주얼은 좋았다. 시각적으로 만족스러워서 아이맥스로 보면 제대로 눈요기를 할 수 있을 듯하지만, 내용이 없기 때문에 굳이 특별관에서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영화 카오스 워킹(Chaos Walking,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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