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One Cut of the Dead, 2017)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듯한 허름한 건물에서 한 여자가 자신에게 걸어오는 남자에게 도끼를 들이대며 애원한다. 좀비로 변한 남자는 본능에 충실해 여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물려고 다가갔지만, 아직 온전한 인간인 여자는 남자가 이전과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공격하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여자는 남자에게 물려 끝을 맞이한다.

갑자기 들려온 “컷” 소리에 주변에 포진해있던 촬영 스태프들의 모습이 슬쩍 지나갔다. 그리고 이내 모두들 감독인 남자의 눈치를 봤는데, 그는 여자의 연기를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같은 장면을 수십 번 찍어도 연기가 나아지지 않는 여자 배우를 향해 감독은 모진 말을 해가며 감정을 이끌어내려고 하지만, 더 이상 촬영을 이어가기엔 그가 워낙 흥분 상태인 것 같아 진정을 시키기 위해 얼마간 휴식 시간을 갖게 된다.

남자 배우와 여자 배우, 분장사 셋이 남아 분위기를 좀 풀어보기 위해 촬영 중인 이 건물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자신들이 찍고 있는 영화 소재인 좀비처럼 이 건물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좀비를 만드는 실험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함께 일하던 스태프들이 진짜 좀비로 변해 그들에게 달려들고, 리얼리티를 강조하던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쫓아다니며 그 상황을 찍는다.

 

 

영화 속에 또 다른 영화로 시작되어 촬영 소재와 같은 사건이 진짜로 벌어졌다. 문제는 평범한 일상을 담은 그런 영화가 아니라 좀비 영화였고, 진짜 좀비가 나타났기 때문에 촬영 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배우들이나 스태프는 기겁을 하고 난리가 났는데 감독 혼자만 기를 쓰고 촬영을 이어갔다. 도무지 제정신이 아니라고 보기에 충분한 행동이었다. 본인 작품에 미쳐도 단단히 미쳐있었다. 그래서 배우와 스태프들은 도망을 치지만 살아남은 사람보다 좀비의 수가 점점 늘어가서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좀비 영화에 빠지지 않는 클리셰가 등장했다. 소리만 지르는 여자, 여자를 지키려고 하는 남자, 그 사이에서 분쟁을 담당하는 캐릭터가 있었고, 좀비에게 물린 건지 아닌지 애매한 상처도 있었다. 강시도 아닌데 숨어서 숨을 죽이고 있으면 좀비에게 들키지 않았고 무기는 어떻게든 발견되기 마련이었다. 의외의 캐릭터가 살아남는 것 또한 결말의 특징이었다.

40분이 조금 되지 않게 이어간 리얼 좀비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까지 모두 올라간 뒤, 화면이 완전히 다른 장르로 바뀌어 당황스럽게 했다. 이 모든 게 좀비 채널 개국 스페셜 드라마로 기획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방송국 측은 개국 기념으로 특이하게 생방송 좀비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감독부터 시작해 스태프, 배우 등 팀을 꾸리기 시작한다.
재미있었던 건 앞서 본 좀비 영화 속 사람들과 실제 인물들 간의 괴리가 컸다는 점이었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된다고 소리 높이던 감독은 영화와는 다르게 본인의 주관 없이 일단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하는 타입이었다. 업계에서는 저렴하고 빠르게 찍는 감독으로 유명한 듯했다. 남자 배우는 좀 진지한 척하며 허세가 있는 듯 보였고, 아이돌 출신의 여자 배우는 힘들거나 비위생적인 건 안 하려고 했다. 외모만 보면 돌도 씹어 먹게 생긴 스태프 역할의 배우는 극도로 예민한 사람이라 물을 가려 마셔야 했고, 촬영장에도 술을 마시고 나타날 정도인 주정뱅이 스태프도 있었다. 감독은 열심히 해보려고 하는데 모인 사람들의 개성이 너무나 강해서 혼자만 끙끙 앓고 있었다.

촬영 준비를 하는 과정 외에 감독의 사생활도 등장했다는 게 특이한 부분이었다. 먼저 등장한 좀비 영화에서 분장사로 활약한 배우가 바로 아내였고, 딸은 영화감독을 꿈꾸며 촬영 스태프로 일하고 있었으나 너무 열정적이라 민폐만 끼친다는 걸 보여줬다.
감독의 가족들이 영화에 어떻게 관여하게 될지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는데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해줬다. 변수였던 건 감독이었다. 이전까지 사람들에게 최대한 맞춰주며 다소 굴욕적으로까지 보이던 감독은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쌓인 게 폭발한 것 같았다. 아이돌 출신 여자 배우를 몰아붙이고 진지한 척 헛소리를 해대던 남자 배우의 멱살을 잡고선 은근슬쩍 진심을 말했다. 감독에게만 변수가 있었던 게 아니라 스태프 역할의 배우들에게도 여러 변수가 일어나 코믹한 장면을 보여줬다.

 

 

보는 동안 영화 촬영이 얼마나 고된지 느껴졌다. 코믹하게 그려냈지만 그 노고를 보니 마냥 웃기에는 좀 안쓰러운 마음이 컸다. 영화의 비밀이 밝혀지기 전, 좀비 영화일 때는 감독 캐릭터가 왜 저러나 싶어서 마음에 안 들었는데, 촬영을 시작할 때까지의 비화를 보고 나니 응원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촬영을 엎어버리지 않고 현장에 투입되어 의도된 상황과 뜻밖의 상황을 잘 이어간 순발력이 좋았다. 코미디 장르에 좀 냉정한 편인데 덕분에 여러 번 피식거리며 웃었다.

러닝타임이 짧고 신선한 전개에 코믹이 더해져서 좋았다.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One Cut of the Dead,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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