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디(Judy, 2019)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주디는 현재 빚에 허덕이고 있다. 거기다 전 남편 시드와 두 아이를 두고 양육권 분쟁도 벌이고 있어서 골치가 아프다. 어찌 됐든 돈을 벌어야 했던 그녀는 두 아이와 함께 무대에 올라 이전보다는 형편없는 액수의 공연료를 받는다. 그러고선 지내는 호텔에 돌아갔더니 숙박비가 밀려서 더 이상 투숙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이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걸 깨닫는다. 결국 새벽이 되어서야 발길을 향하게 된 곳은 전 남편 시드의 집이었다.

집도 없이 빚만 있는 주디가 두 아이를 데리고 오기엔 불리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던 찰나 런던에서 그녀의 이름을 내건 공연 제안이 들어온다. 미국에서는 이미 한물 간 그녀였으나 영국에서는 아직 먹히고 있다는 말과 공연을 마치고 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와 함께 살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제안을 받아들인다.

 

 

영화는 누군가에게 훈계를 듣는 어린 주디의 클로즈 업된 얼굴로 시작되었다. 10대 소녀라 한창 놀고 싶고 먹고 싶은 게 많을 나이였지만, 주디와 계약한 MGM 제작사는 쉬고 싶다는 말을 그저 투정으로 여겼다. 제작사는 18시간 동안 일을 한 주디를 쉬지도 못하게 했고, 살이 찌면 안 된다고 먹지도 못하게 했다. 배고프다는 주디에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알약을 내밀며 먹으면 허기지지 않을 거라고만 했다. 거기다 잠도 제대로 재우지 않았으니 주디의 하루하루는 고통스러웠다. 감옥 같은 촬영장에서 주디가 할 수 있는 일탈은 완벽하게 세팅된 머리와 옷차림 그대로 수영장에 들어가 망쳐놓는 것뿐이었다.
2살 때부터 무대에서 노래를 했었다는 성인 주디의 우스갯소리를 통해 그녀가 노래를 좋아했고 잘 부르기도 했으며, 또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던 덕분에 <오즈의 마법사>에 출연해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만들어내긴 했지만, 그 명성으로 얻은 것보다 잃은 게 훨씬 많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대 위의 반짝이는 스타가 되어 그 나이대의 평범한 소녀가 가질 수 없는 부와 명성을 얻었으나 정작 주디가 원했던 건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고 졸릴 때 잠을 자고, 남자친구를 사귀는 등의 일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원치 않게 혹독한 삶을 살았던 주디가 나이 들어서 편하게 생활할 리가 없었다. 먹지 못하고 잠들지 못하는 생활에 인이 박혀 몇 번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지금까지도 원치 않게 그렇게 살고 있었다.
주디는 힘겨운 10대를 지나왔기에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그런 삶을 살지 않게 하고 싶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찾아보니 주디의 어머니가 딸에게 욕이 나오는 몹쓸 짓을 시키기도 했다는데, 그런 과거 때문인지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고 괜찮은 환경에서 연예계와 상관없이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명성이 떨어진 주디는 불러주는 곳에 맞춰서 가야 할 지경이었고, 원치 않게 아이들도 데리고 무대에 올라야 했다.

 

 

다행히 영국에서 불러준 덕분에 마음을 다잡고 떠나지만 리허설조차 하지 않으려는 주디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졌다. 혹시 무대 공포증이라도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기억나지 않는 어릴 때부터 노래를 불러온 그녀가 이제는 무대에 서기 두려워진 까닭은 짐작건대 사람들의 기억 속 도로시와 주디가 많이 달라 실망할 것 같다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사랑받은 어린 도로시의 이미지가 주디를 판단하는 데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디는 무대 밖에서 안절부절못하던 것과는 달리 성공적으로 공연을 끝내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여전히 사랑받는 도로시, 주디였다.

그렇게 환호를 받고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던 무대 위의 주디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곁에 아무도 없어서 쓸쓸한 진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술을 마시자고 불러낼 친구가 없고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눌 친구 하나 없는 신세가 너무나 처량했다. 공연이 끝나고 자신을 기다리던 팬에게 함께 밥을 먹자고 제안한 것은 무대와 현실의 주디에 반씩 발을 담가 외로움을 달래고자 했던 건 아니었을까 싶다. 평범한 삶을 꿈꾸지만 그럴 수 없는 주디가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 장면 이후에 현재 런던 공연을 중심으로 무대 위와 무대 밖에서의 주디와 소녀 시절의 주디를 번갈아가며 보여주면서 그녀는 대중에게 사랑받고 싶은 스타이고 싶으면서도 소박하게 살고 싶어 한다는 갈망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제는 정말 사랑하는 남자에게 정착해 행복한 삶을 꿈꾸고,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로 곁에 있고 싶은 절실한 마음이 와닿았다. 그러면서도 무대 위에서는 노련한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 행복해했다.

공존할 수 없는 두 개의 삶을 꿈꾸는 건 욕심이 아니었다. 평범한 시절을 빼앗겨 현재까지 그 영향이 미친 주디에게 다른 사람들의 삶은 바라고 또 바라는 동화 속 무지개 너머 세상과 같았다. 이제는 원하는 걸 마음껏 할 수 있음에도 길들여진 습관으로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그녀의 삶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곁에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이 없어서 무대에 올라 사랑받고 싶은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케이크 한 조각이 이렇게 맛있다는 걸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은 서글픔과 언제까지나 자신을 응원해 주는 팬이 있다는 가슴 벅찬 감동을 동시에 느끼는 주디 갈란드의 삶의 공허를 잠시나마 생각해 보게 됐다.

 

 

<오즈의 마법사>가 영화사에 길이 남은 영화이고 학생 때 학교에서 몇 번 틀어준 적이 있으나 언제나처럼 안 보고 딴짓을 해서 주디 갈란드에 대해서도 잘 몰랐었다. 그러다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르네 젤위거가 이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궁금해져 뒤늦게 찾아보게 됐다.

10대 소녀에게 너무나 가혹했던 모습을 보며 정말 화가 났었다. 다른 아이들은 가질 수도 없는 삶이라고 말하며 주디를 타이르는 제작사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녀를 고통받게 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주디가 벌어들일 금전적 이득 때문일 테지만 성인에게 적용해도 엄했던 잣대를 어린 그녀에게 들이대는 건 정말 빌어먹게 나쁜 대처였다. 그로 인해 그녀가 약물 중독과 여러 번의 자살 시도로 위태로운 삶을 살게 됐기에 더욱 분노했다. 현재는 어린 스타들의 연예계 생활이 법적으로 엄격하게 보장되고 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주디 갈란드는 그런 권리를 누리지 못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르네 젤위거의 연기에 깊이 몰입했다. 브리짓 존스 캐릭터 이미지가 굳혀졌던 르네 젤위거의 변신이었고 완벽한 연기였다. 그래서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기다리던 명곡을 부르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나도 함께 펑펑 울고 말았다. 르네 젤위거의 노래와 연기가 영화를 빛나게 만들었다.

 

영화 주디(Judy,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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