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제(Josée, 2020)

 

 

대학 졸업을 앞둔 영석은 자취 집 근처를 지나가다가 어떤 여자가 휠체어에서 떨어져 쓰러져 있는 걸 본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그는 낯선 여자를 도와 휠체어에 다시 앉혀주려는데, 바퀴가 고장이 나 타고 가기엔 위험해 보였다. 그래서 영석은 근처 구멍가게에서 리어카를 빌려 여자를 태워 집까지 데려다준다. 마침 집에 온 할머니와 마주쳐 안면을 트고, 도와준 대가로 밥까지 얻어먹는다.

그 짧은 반나절의 만남은 영석에게 꽤나 인상에 남았는지, 누군가가 버리고 간 가구를 해체해 리어카에 싣는 할머니를 보고 도와 다시 그녀의 집에 가게 되고 또 밥을 얻어먹는다. 영석은 자신을 조제라고 불러달라고 하는 그녀와 가까워져 이제는 딱히 볼 일이 있지 않아도 집을 찾아가고 함께 밥을 먹는 사이가 된다.

 

 

장애가 있어 다리를 쓰지 못해 휠체어가 있어야지만 밖에 나갈 수 있는 조제는 집에만 고여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여느 사람들처럼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어서 누군가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조제와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함께 사는 할머니뿐이었다.
다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인 삶을 살고 있긴 해도 조제의 생각이나 경험은 고여있지 않았다. 바깥 활동을 할 수 없는 대신 조제가 집안에서 할 수 있었던 건 할머니가 주워온 책을 읽는 일이었다. 온갖 종류의 책을 읽으면 조제는 직접 경험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소설 속 주인공이 사는 나라를 가본 것 같은 착각을 할 정도로 깊이 몰입했다. 작가가 그린 세계, 실제로 한 경험을 바탕으로 조제가 상상해낸 것이었지만, 그녀에겐 그게 자신의 진짜 경험인 것만 같았다.
반면에 영석은 흐르는 대로 살았다. 허우대가 멀쩡하고 자취를 하며 대학에 다니고 있는, 겉으로 보면 건실한 청년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석은 되는 대로 살고 있었다. 심지어 교수와 말 못 할 관계이기도 한 걸 보면 누군가의 손에 이끌리는 대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무엇에도 흥미가 있지 않은지 카페에서 오래 일했음에도 커피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런 영석에게 조제는 자신이 만나본 적 없는 신선한 부류의 사람이었다. 어려 보이는 조제가 영석에게 보자마자 하대를 하는 말투는 기분이 나빠야 하는데 궁금함이 우선이었고,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건 왠지 모르게 재미있었다. 자신과 다른 조제에게 느끼는 감정은 처음엔 호기심이었으나 나중엔 영석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감정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오며 살갑게 굴고 세상으로부터 닫아버린 문을 조금씩 열어주는 영석과 자주 만나게 된 조제는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여 들뜨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이 앞서 움츠러든다.

 

 

두 사람은 외형적으로 다른 부분이 가장 눈에 띄지만, 내면으로도 많이 달랐다. 내면이 다르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에 차이가 있다는 뜻이었다. 같은 집을 바라보더라도 조제와 영석의 시선은 너무나 큰 차이를 보였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게 사랑이라고들 하는데, 조제와 영석은 같은 곳을 보고 있어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깊은 관계가 되어도 머지않아 끝이 날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의 다름은 어떤 면에서든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다.
영석은 고여만 있던 세계에서 조제를 꺼내올려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었다. 영석이 직접적으로 한 일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영석 덕분에 조제가 변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게 됐다. 한편으로는 조제 역시 변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집을 고쳐준다고 나온 복지사 사람들 중 언니라고 부르며 살가웠던 한 여자를 보며 조제의 눈빛이 조금은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자신과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그녀의 당당함을 조제 역시 느끼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조제와 깊은 관계가 된 영석은 그녀를 보살핌으로써 책임감을 갖게 됐다. 자신을 좋아하는 후배와 짙은 스킨십을 하고도 관계를 이어가려는 하등의 노력도 하지 않았던 영석이었는데, 몸이 불편한 조제를 만나고 함께 살게 되면서 달라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어진 사랑이 영석을 변하게 만든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사랑이 두 사람을 좋은 쪽으로 변하게 만든 셈이었다. 둘의 관계가 어느 선 이상을 넘지 못했을지라도 남겨진 감정이나 경험, 그 모든 것들 덕분에 좋은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평이 엄청나게 좋은 일본 로맨스 영화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된다고 했을 때부터 우려했다. 원작이 좋으면 좋을수록 리메이크는 실망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캐스팅된 두 배우의 비주얼이 뛰어나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배우들은 원래 예쁘고 잘생기긴 했지만 한지민 배우와 남주혁 배우는 영화를 예쁘게 포장하려는 것 같아서 보기도 전에 걱정했다. 그런데 막상 영화 속 두 배우의 감정 연기는 좋았다. 뛰어난 비주얼의 배우들이 멜로 연기를 하니 푹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려했던 것보다는 괜찮은 부분이었다.
예상외로 내용이 좀 아쉬웠다. 원작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으로 그려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깨뜨리는 전개라 새로웠고, 사랑이 변해가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똑같다는 걸 보여줘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미묘하게 변해가는 감정을 배우들이 깊이 있게 표현해 마음이 아팠었다. 그리고 엔딩 역시 아직까지 기억이 날 만큼 영화 자체가 주는 울림이 컸다. 그런데 리메이크작인 <조제>에서는 사랑이 변해가는 과정을 도려냈다. 어느 한쪽을 나쁘게 만들 수는 없었던 건지 사랑하니까 이제 보내준다는 식의 착한 이별로 훌쩍 건너뛰어서 굉장히 아쉬웠다. 이런 사랑도 있기야 하겠지만 너무 예쁘고 착하게만 포장해서 원작만큼의 감성이 느껴지질 않았다.

예상했던 부분에서 오는 아쉬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오는 아쉬움이 공존했다. 현실적으로, 누군가가 진짜 경험했을 것 같은 사랑으로 그려냈다면 어땠을까 싶다. 원작이 너무 뛰어난 작품이라 상대적으로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지만, 원작을 접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나름대로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조제(Josée,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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