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와일드라이프(Wildlife, 2018)

 

 

1960년 대. 어느 가족이 이제 막 몬태나로 이사를 와 적응 중에 있다. 아빠 제리는 골프 클럽에서 일을 하고 엄마 자넷은 아들을 위해 집에 있기로 결정했다. 두 사람의 14살 아들 조는 전학 간 학교에서 아직까지 친구를 사귀지 못했고, 저번 학교에서 했었던 풋볼을 이 학교에서도 계속하기엔 어려운 것 같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이가 똑똑하고 자립심이 강하며 자존감이 높아 보였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그리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현재의 생활에 큰 불만 없이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제리가 골프 클럽에서 갑자기 해고를 당하면서 가정 내에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제리는 다시 일을 구하려고 하지 않으며 이것저것 따지기만 했다. 가계 형편 때문에 자넷은 일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며 돌아다녔고, 아직 14살밖에 되지 않은 조 역시 학교가 끝나고 사진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런 아내와 아들을 지켜보던 제리는 별안간 산불을 진화하는 작업에 자원했다고 선언한다. 오랫동안 꺼지지 않는 불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는 자넷은 제리를 말리지만, 제리는 괜찮을 거라며 불길을 잡거나 첫눈이 오면 집에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하곤 떠나버린다.

 

 

겉으로 보기엔 조의 가족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했다. 새로운 곳에 이사를 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잘 해보겠다는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빌린 집에서 살고 있었지만 제리가 일해서 버는 돈으로 생활을 충당할 수 있었기에 자넷이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결정을 내렸던 것 같다. 부부는 사이가 좋아 서로에게 다정했고 조의 풋볼 연습과 과제를 번갈아가며 도와주는 등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있는 조는 사춘기가 왔을 나이였지만 의젓하고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화목하게만 보이던 가정이 깨진 것은 한순간이었다. 가정 내의 불화가 일어나기 전, 제리의 실직으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균열을 메꾸기 위해 자넷과 조가 노력을 했지만 제리가 제자리에 멈춰 서 있는 한 틈은 점점 벌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한순간에 무기력증에 빠진 것처럼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제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억울하게 해고를 당한 입장이라 당황스럽고 화도 난다는 건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아내와 아들이 그의 기운을 북돋워주려고 애를 쓰는데도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정말 너무했다.
그러다 갑자기 산불 진화 작업을 하겠다며, 시급을 1달러밖에 안 주는 일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갑자기 떠나버린 것 역시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제리에게 그 정도의 사명감 따위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난데없이 그런 결정을 내리고 가족을 두고 황망히 떠나버렸다.

남겨진 자넷과 조의 입장에서는 정말 황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잡히지 않는 불씨였기 때문에 걱정도 됐을 터였다. 그런데 제리에 대한 걱정은 아주 잠깐이었고 이후에는 분노가 그 자리를 채워 자넷을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자넷은 여태껏 수면 밑에 감춰두었던 제리에 대한 불만을 터트렸다. 마치 제리는 원래 무책임한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듯했다. 자넷의 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알 수 없는 이유로 떠나버린 남편이었고, 더군다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건 온전히 자신의 몫이었을 테니 화가 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자넷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혹시나 모를 미래를 계획하느라 아들에게 못 볼 꼴을 보이고 말았다. 산불 진화 작업은 위험했기 때문에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고, 제리가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이미 한 번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던 그를 더 이상 믿을 수 없을 터였다. 그래서 자넷은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이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가 경제적으로 의지할 데는 부유한 남자뿐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가족은 버려두고 문득 정의감으로 떠난 아빠와 그런 아빠를 욕하며 나이 많은 아저씨와 만나는 엄마의 모습을 모두 지켜보는 아들 조의 감정이 온전히 전달됐다. 14살이면 아직 어린 나이이고 철없이 행동할 법도 한데 조는 부모에게 왜 그러냐며 큰 소리 한 번을 내질 않았다. 그들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될지 생각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런 조를 보고 있자니 사실 제리와 자넷이 몬태나에 이사를 오기 전에도 그리 좋은 부모는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차분하고 어른스러운 것은 성격 탓이 크겠지만, 환경의 영향도 무시할 바가 못 된다. 조가 다른 형제가 있는 첫째 아이였다면 어른스러운 게 조금은 이해되겠지만 그는 외동이었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을 외동아이가 어리광을 부리기는커녕 참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줬기 때문에 제리와 자넷의 부모다움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철없고 무책임한 부모로 인해 조는 어쩔 수 없이 일찍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일을 구하지 않는 아빠를 위해 학교가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했고, 돈 많은 아저씨에게 식사 초대를 받아 술을 많이 마신 엄마 대신 운전을 했다. 참고 또 참던 조가 화가 나서 짐을 싸서 떠나려고 하고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손길을 무시하고 도망치기도 했지만, 결국 아이가 돌아갈 곳은 부모가 기다리는 집뿐이었다는 게 안쓰러웠다.
가여운 조를 보며 자넷과 제리에게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른다. 그들은 조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부모였기에 나쁘다고만 말할 수는 없었지만, 기분에 따라 행동하며 돌봐주어야 할 아이보다 자신의 감정과 앞으로의 삶을 우선시했다. 자신을 먼저 생각할 거라면 아이는 뭐 하러 낳았나 싶다. 적어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기다리던지, 아니면 아이가 안 보는 데서 뭔가를 했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서 짜증이 났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이가 꾹꾹 눌러서 참고 있을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정말 답답했다. 착하기만 한 이 아이가 마지막까지 자신보다 부모를 먼저 생각하고, 지금 이대로가 최선의 행복임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 괜히 슬퍼졌다.

 

 

연기를 정말 잘하는 제이크 질렌할과 관심 있는 배우인 캐리 멀리건이 출연했다고 해서 궁금했던 영화였다. 개봉했을 때 보고 싶었으나 근처에 상영관이 없어서 못 봤던 걸로 기억한다. 메모도 안 해두었는지 잊어버리고 있다가 문득 생각나서 찾아보게 됐다. 그런데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여러 영화에 출연해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준 배우 폴 다노가 연출했다는 걸 알았다. 원작 소설을 여자친구 조 카잔과 함께 각색해 연출한 영화라고 한다.

사실 출연한 배우 때문에 궁금해진 영화라 무슨 내용인지 잘 몰랐는데 보는 동안 분노라는 감정을 가장 많이 느꼈다. 그리고 무책임한 부모로 인해 일찍 어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아이에 대한 연민도 느꼈다.
그래서 자연스레 조를 연기한 에드 옥슨볼드에게 감정을 이입했고 그러다 보니 연기에 눈길이 갔는데, 정말 섬세한 감정 연기를 보여줘서 놀랐다. 에드 옥슨볼드가 출연한 영화 중에 감상한 건 <더 비지트>와 <베러 와치 아웃>뿐이라 몰랐는데 이 영화를 통해 연기를 정말 잘한다는 걸 알았다.

잔잔한 영화라 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에 집중할 수 있긴 했지만, 내용면에서는 약간의 짜증과 분노, 안타까운 감정이 지배적이라 다 보고 나서도 뒷맛이 씁쓸한 영화였다.

영화 와일드라이프(Wildlife,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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