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엠마(Emma, 2020)

예쁘고 똑똑하고 부유하기까지 한 엠마는 최근 가정교사의 중매를 성사시켜 득의양양하다. 그녀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것에는 재미를 느끼지만, 정작 자신은 남자를 만나거나 결혼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자신이 결혼하면 혼자 살게 될 아버지 미스터 우드하우스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관심이 가는 신사도 딱히 없다.

이번에 엠마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기숙학교에 다니는 해리엇이었다. 순수한 매력을 가진 해리엇과 함께 어울리고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그녀가 왠지 미스터 엘튼과 잘 어울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서로에게 호감이 있는 듯해서 두 사람을 이어주기 위해 자주 자리를 마련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엠마의 예상과는 다른 상황만 벌어진다.

영화 전반부 로맨스의 중심은 해리엇이었다. 엠마는 남녀 사이의 애정 관계에 자신을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가까운 해리엇의 중매가 지대한 목표였다. 하지만 가진 게 없는 순박한 아가씨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줄 신사를 찾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그리고 해리엇은 자신과 성격이나 환경, 외모까지 상반된다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엠마는 답답하기만 할 뿐이었다.

여기에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해 영화 초중반에 온갖 사건으로 코믹함을 줬다. 오해하고 김칫국을 마신 엘튼이 금세 결혼한 사건이 있었고, 말이 워낙 많은 미스 베이츠를 마주칠 때마다 당혹스러워하는 엠마의 모습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엠마의 아버지 미스터 우드하우스는 건강에 대한 염려가 심해 안달을 하며 하인들과 때때로 가벼운 재미를 유발했다.

캐릭터들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에는 여러 사람들이 얽히고설키며 흥미로운 관계를 보여줬다. 미스 베이츠의 조카 제인이 등장해 동갑내기 엠마와 왠지 모를 대결 구도를 형성했다. 이전까지 등장하진 않고 소문만 무성했던 프랭크 처칠이 드디어 하이베리에 나타나 잘생긴 외모로 엠마를 포함한 뭇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귀족답지 않게 소탈한 미스터 나이틀리는 엠마와의 의견 충돌로 싸우고 화해하고, 때로는 그녀의 잘못을 꾸짖기도 하는 등 영화 내에서 제일 중립적이면서 신사다운 모습을 보였다.

19세기 영국에서 여자는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하거나 아니면 혼자 살거나 둘 중 하나였다. 때로 예외가 있긴 했지만, 그 시대의 여성에겐 직업을 갖는다는 선택지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재력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긴 한데 당시 여성의 입장에선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10대에 사교계에 데뷔하여 남편감을 골라 일찍 결혼을 했다.
그 대부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엠마였다. 하이베리에서 제일 가는 미인이자 그녀와 마주친 누구나 눈을 빛내며 바라보는 인기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부유한 배경 덕분에 결혼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엠마는 미모, 지성, 재산까지 웬만한 것을 다 갖춘 여자였기 때문에 시대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매력적인 그녀에게도 단점은 있었다. 본인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관철시키는 고집이 있었고, 허영도 조금 있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얕잡아보기도 했으며 편견 또한 가지고 있었다.
해리엇은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생아였지만 자신과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처음엔 목사 엘튼과 이어주려고 했고, 나중엔 상속받을 유산이 있던 프랭크 처칠과도 엮었다. 그들과 본격적으로 엮기 전에 미스터 나이틀리의 소작농 마틴이 해리엇에게 청혼을 했다는 편지에는 거절을 하도록 에둘러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해리엇의 수준에 마틴이 맞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미스터 나이틀리의 눈으로 볼 때 그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이 있고, 더없이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 엠마가 잘못하고 있다고 일깨워줘도 그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거기다 마음속에만 담아뒀던 미스 베이츠에 대한 진심을 때로 생각 없이 드러내기도 하는 철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엠마의 성격적 결함이 드러나면서 그녀도 완벽하지는 않은 인간임을 보여줬다. 잠깐 집에 다녀간 언니 말고는 영화 내에서 엠마와 비슷한 위치의 귀족 여성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유한 환경이 엠마의 성격을 형성시켰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소문만 무성했던 잘생긴 프랭크 처칠이 등장하고, 이웃에 살아서 왕래가 잦았던 미스터 나이틀리와 묘한 분위기가 생기면서 엠마에게도 사랑이 찾아오는 듯했다. 그러나 여태껏 다른 사람들의 애정 전선에는 눈치 빠르게 굴긴 했어도 정작 자신의 감정을 읽는 데에는 서툴렀던 그녀였기에 오해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래서 영화 후반이 참 재미있었다. 다 아는 척 깍쟁이같이 굴었으면서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서툰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을 통해 엠마는 사랑을 이루면서 성격의 모난 부분을 둥글게 다듬어 나갔다. 그녀를 사랑하고 일깨운 사람 덕분에 엠마는 자신이 잘못한 것과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게 무엇인지 깨달았고 그것을 바로잡기도 했다. 다소 이기적이었던 엠마의 로맨스 안에 그녀의 성장 또한 보여주고 있던 셈이었다.

1997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이 영화는 몇몇 작품에서 좀 어둡고 예민한 역할을 맡은 안야 테일러 조이가 출연해 흥미를 끌었다. 극장에서 보고 싶었으나 사회적인 문제가 있었고 시간대도 거의 없어서 못 보고 지나쳤는데 VOD 나온 줄 잊고 있었다가 이제야 보게 됐다.

제인 오스틴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는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만큼이나 많다. 요즘의 시선으로 보기엔 너무나 뻔하고 늘 결혼으로 마무리가 되는 해피엔딩이지만, 나 역시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좋아하고 시대극이라는 매력 덕분에 이번 영화도 너무 재미있게 봤다. 로맨스만 있지 않고 코믹한 장면도 더러 등장해서 더욱 푹 빠져서 봤다. 몇몇 장면이 어찌나 재미있었는지 소리 내서 웃기도 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캐릭터가 소설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깍쟁이 엠마를 연기한 안야 테일러 조이는 이전의 어두운 분위기가 생각이 안 날 만큼 매력적이었다. 미아 고스 역시 여러 영화에서 묘한 캐릭터로 출연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촌스럽고 순수한 해리엇 그 자체였다. 그리고 말 많은(원작에서 2페이지 이상!) 미스 베이츠도 상상한 그대로였고, 미세스 엘튼도 꼴 보기 싫게 원작과 비슷한 이미지였다. 캐스팅이 참 잘 된 영화였다.
그리고 당시 시대를 잘 드러낸 부분 역시 매력적이었다. 엠마의 화려한 옷과 장식들이 눈길을 사로잡았고, 배경으로 펼쳐진 자연과 웅장한 저택이 잘 어울렸다. 전반적으로 파스텔톤이 많이 사용되어 뽀얀 분위기가 그냥 참 좋았다.

발랄한 분위기로 가벼운 즐거움을 주며 진정한 사랑을 찾는 로맨스에 주인공의 성장 또한 볼 수 있었던 매력적인 영화였다.

 

영화 엠마(Emma,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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