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언더워터(Underwater, 2020)

바다 밑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심해 11km 지점에 위치한 시추 기지가 붕괴된다. 깨어있던 노라는 기지가 무너지면서 바닷물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에 피해 가면서 함께 일하는 대원들을 깨우지만 로드리고 외에는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기지가 폭발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문을 폐쇄해야 하는 상황에 선택의 여지 또한 없기도 했다.
노라는 로드리고와 함께 무너진 기지 잔해를 뚫고 지나가면서 자신을 포함해 총 6명이 살아남았다는 걸 알게 된다. 그들은 언제 무너질지 모를 기지를 탈출할 방법을 강구하는데, 탈출선인 포드는 망가져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보호 슈트를 입고 바닷속으로 들어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다른 시추 기지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바닷속으로 들어간 그들은 너무나 어두운 그곳에서 한 치 앞도 볼 수가 없었다. 서로의 목소리와 약한 불빛에 의지해 걸어가지만, 이내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나 그들을 위협한다.

영화는 사건이 일어날 전조나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 없이 바로 도입으로 시작됐다. 배경이 되는 심해의 공간을 보여주고 영화를 이끌어갈 주요 캐릭터인 노라가 등장하자마자 기지가 붕괴된 셈이었다. 러닝타임이 짧은 스릴러 영화라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한정적인 공간에서의 탈출이라는 흔한 소재에 굳이 사설은 필요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설명하기보다는 처음부터 위기 상황에 집어넣고 주의력을 집중시키는 게 훨씬 나았다.

지 붕괴라는 첫 번째 위기를 넘긴 노라가 로드리고와 함께 동료들을 만나 기지를 탈출하는 게 두 번째 위기였다. 보호 슈트와 헬멧을 착용하고 깊은 바다를 걸어서 간다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그들은 바다 깊숙한 곳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을 테지만, 일하던 기지는 산소가 충분하고 바닷물이 기지 내부로 들어오지 않는 안전한 곳이었기에 미지의 공간에 몸을 감싸는 장치 하나만 믿고 나가는 것에 두려움이 앞섰다. 심해의 공간에 탈출이라는 요소가 더해져 긴장감을 배가시켰다.

동료들 사이에 못하겠다, 괜찮다의 짧은 실랑이가 끝나고 겨우 바다로 들어간 순간, 우려하던 첫 희생이 일어나고야 만다. 그렇게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각오로 어둡고 깊은 바닷속을 걸어가는 그들 앞에 괴생명체가 나타났다. 언뜻 보이는 기이한 외형은 무시무시했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빠른 몸놀림으로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그들을 패닉 상태에 빠뜨렸다.
기괴한 존재가 공격을 하며 단숨에 목숨을 끊어놓을 수 있었는데 그렇다고 후퇴를 하기에는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진퇴양난의 상황이었으나 전진 외에는 답이 없었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영화의 배경인 “심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공포심은 언제나 통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다가 생명체가 살고 있는 곳이기에 약간의 거부감도 들었던 것 같다. 공간적인 공포와 심해 괴생명체라는 공포심을 유발하는 대상이 더해져 2배의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거기에 두 가지 요소로만 만족하지 못했는지 탈출까지 더해졌기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봤을 만큼 한껏 긴장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내내, 아니 시작부터 긴장감에 움츠려서 볼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뒷골이 당겼을 정도로 몰입감이 엄청났다.

등장인물이 여럿이라 모두가 무사할 리 없다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심해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순간 일어난 사고로 사망 플래그가 시작됐다. 주인공과 같이 처음 살아남은 사람이라는 조건과 아무렇지 않게 스치듯 한 행동은 죽음의 전조였고, 그 후로도 살아남은 몇몇 사람들이 보여준 모습은 비슷한 장르나 공포, 전쟁 영화 등에서 죽음을 예측할 수 있는 바로 그 행동이었다. 순서대로 죽음의 제비뽑기를 하고 있던 셈이었다. 그런 면에서는 전형적인 클리셰였다. 아닌가 싶은 순간이 있었지만 조금 유예를 뒀을 뿐 죽음은 비켜가지 않았다.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지 않았나 싶다. 아무리 봐도 모든 사람이 살아남을 수 없는 조건인데 극적으로 살려줄 수는 없었고, 어느 정도 긴장감을 유지하려면 순차적인 죽음이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클리셰를 비켜간 결말이 등장해서 조금 놀라웠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영화에서 불문율이라 여겨지는 그 설정이 이 영화의 결말엔 없었다. 캐릭터들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거의 등장하지 않아서 내내 공포심만 주는 군더더기 없는 전개가 이어지다가 잠깐 긴장이 느슨해진 후반에 풀어놓은 사연이 결국 사망 플래그가 됐다. 그런 결말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왠지 새로웠다.
하지만 아쉽게도 결말이 주는 또 다른 느낌은 뭔가 오글거린다는 게 문제였다. 이런 영화에 희생정신은 당연한 설정이긴 하지만 그걸 표현하는 분위기가 왠지 부끄러웠다. 그 때문인지 결말이 조금 아쉬웠다.

영화를 보고 뒤늦게 찾아보니 감독의 전작이 <더 시그널>이라 아쉬운 결말에 수긍했다. <더 시그널>을 보면서 설정이 정말 좋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설정을 활용하지 못한 결말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뒷심이 좀 약한 타입인가 보다.

보는 동안 여러 영화가 떠올랐다. <에이리언>, 제이크 질렌할 주연의 우주 괴생명체 영화 <라이프>, 심해 공포증을 유발하는 <47미터> 등이었다. 아무래도 영화로 사용하기 좋은 소재에 심해, 탈출, 괴생명체라는 3콤보의 설정이라 그런 것 같다.

여러 영화가 생각나고 결말이 달랐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긴장감을 주는 오락 영화로는 나쁘지 않았다.

영화 언더워터(Underwater, 2020)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