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디갔어, 버나뎃(Where’d You Go, Bernadette, 2019)

분야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창의적이고 잠재력이 우수한 사람에게 매년 수여되는 맥아더상을 최연소로 수상했던 건축가 버나뎃 폭스는 현재 업계를 떠난 지 20년이 되었다. 과거에 기숙학교였으나 현재는 유령이 나올 것 같은 집을 대충 수리하며 남편 엘진, 딸 비와 함께 겉으로 보기에는 나름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그녀를 괴롭히는 수많은 요소를 제외하면 말이다.

버나뎃은 불안 증세로 불면증을 안고 있었고, 불면증 때문에 불안해하기도 했다.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에 그녀는 늘 잠을 못 자서 예민한 상태였다. 그녀의 가족이 사는 언덕의 넓은 부지 바로 아래에 사는 이웃 오드리는 사회성이 없는 버나뎃을 별로 안 좋아하는 티가 났다. 더군다나 오드리와 친한 아이 엄마 수린이 하필이면 엘진의 새 비서로 일하게 되는 바람에 버나뎃은 남편과 이웃 모두에게 실수가 과도하게 부풀려 까발려지는 기분도 든다.

가뜩이나 이런 상황에 FBI가 찾아와 온라인 비서 만줄라 때문에 버나뎃이 본의 아니게 범죄에 관련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녀는 엘진에게 미안해서 죽을 것 같아서 자괴감에 빠지면서도 반감이 들어 일단 도망을 치고 본다.

버나뎃은 낯선 사람과 마주하는 상황 자체를 불편해하는 듯했다. 자신을 존경하고 반가워하는 사람이든, 오드리처럼 눈치챌 수 있을 정도의 경계심을 가진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불편한 감정을 느끼긴 했어도 상대방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자신을 반갑게 알아봐 주는 상대에게 힘겹지만 할 수 있는 한까지 응대를 했고, 오드리가 요구하는 사항이 자신의 집과 관련된 것이라 불쾌했을 텐데도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 사회성이 없긴 해도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었다.

버나뎃의 현재는 경계심과 부적응으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과거의 그녀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20여 년 전 건축가로 살던 때에 버나뎃은 환하게 빛나는 별처럼 반짝거렸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게 지금처럼 힘들진 않았으며, 동종 업계의 사람들은 그녀를 질투하기보다는 감탄하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로 버나뎃은 재능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결혼한 이후에 지은 “20마일 하우스”로 맥아더상을 수상해 엘진은 그녀를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그 집과 관련된 사건이 버나뎃에게 실패했다는 좌절을 안겨줬다. 거기다 네 번 일어난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녀는 몸과 마음에 수많은 상처를 입었다. 다행히 버나뎃은 회복되는 기미를 보였고 행복을 주는 존재인 딸 비가 태어났지만, “건축가 버나뎃”의 명성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듯했다.
어쩌다가 손에서 놓아버린 재능과 영감을 실체화하는 기쁨은 딸 비를 키우면서 대신하게 됐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을 하는 엘진은 매일 바빠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어서 비와 함께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었던 탓도 있지만, 비가 성장하면서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줬기 때문에 버나뎃은 딸 앞에서만큼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다. 버나뎃이 말하지 않아도 비는 엄마의 감정과 마음을 너무나 잘 알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 편이 되어줬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비난하고 탓하더라도 내 편이 있다는 든든함은 버나뎃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했다. 비가 있다면 버나뎃은 무적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딸이 어느새 자라서 시애틀의 반대편에 있는 기숙학교에 가기를 희망하고, 또 입학 허가를 받아 머지않아 곁을 떠날 거라는 생각은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버나뎃이 건축 일만큼이나 좋아하고 마음을 기울였던 게 비와 함께하는 일상이었는데, 딸의 미래를 위해 붙잡을 수 없는 상황이 닥쳐버렸기 때문이다.
버나뎃의 모습에서 꿈을 잃어버린 엄마들의 모습이 보였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그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으로 살다가 결혼 후에는 육아에 묶여있느라 자신이 누군지 잊어버렸다. 과거의 명성이 어땠든 지금은 그저 누군가의 엄마라는 위치에 익숙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가 자라서 그마저도 손을 떼야 할 상황에 다다르자,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허탈감이 밀려온 듯했다. 비를 맞으며 여러 감정을 느끼는 버나뎃의 모습이 서글펐다.

이런 상황에 엘진이 버나뎃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밀어붙이게 되면서 그녀는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이 되어 도망치게 된다. 부부라는 관계는 가족으로 묶인 사이긴 하지만, 젊었을 때는 열렬히 사랑하며 모든 것을 나누는 사이였을 텐데 이제는 남만큼이나 멀어졌다. 엘진이 버나뎃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본인과 대화를 나누는 게 우선이었어야 했는데, 남의 말만 듣고서 버나뎃을 판단 내려버렸다. 그러고선 모든 걸 결정한 이후 통보하는 모습을 보며 어찌나 열이 받았는지 모른다. 엘진이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나는 뻔히 보였는데 본인은 전혀 깨닫지 못했나 보다.(남편이 아니라 남의 편이라고 하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었다.)
비가 기숙학교에 가고 나면 가까이에 남는 가족은 남편 엘진뿐인데 그가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을뿐더러 말조차 듣질 않으니 버나뎃으로서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에 몰려 어쩔 수 없이 도피했던 덕분에 버나뎃은 엄마 역할에 충실하느라 잊고 있었던 자신의 기쁨, 심장이 두근거릴 열정을 되찾게 된다. 그 과정에서 버나뎃에게 다가온 우연과 기회가 비현실적이긴 했지만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너그럽게 생각할 수 있었다. 현실, 비현실적인 걸 떠나서 중요한 건 한 사람의 인생 앞에 또 다른 길, 과거의 자신이 꿈꾸던 길이 열리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포기하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버나뎃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간절하게 붙잡은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버나뎃을 찾는 여정을 통해 그 누구보다 엄마를 잘 아는 비 덕분에 엘진은 아내가 빛나던 시절을 되새기며 “남의 편”이 아닌 그녀를 사랑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여줬다. 가족을 위하려다 한 행동이 어쩌다 보니 큰 사건으로 이어졌지만, 결국 가족 덕분에 다시금 새로운 길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된 셈이었다. 그래서인지 후반 장면이 뭉클해져 눈물이 좀 나기도 했다.(남 울면 따라 우는 사람.)

잊어버린, 혹은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는 과정에 대해 말하는 영화는 제법 많다. 현실에서 도피했다가 마침내 길을 찾는 결말은 영화에서 흔한 내러티브였다. 하지만 흔하고 뻔하더라도 다 똑같은 방식으로 풀어가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매번 감동을 받게 된다.
주인공에게 얼마나 몰입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는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버나뎃이 어떤 과거를 지나쳐 현재에 이르게 됐는지 보여줬다. 그 과정을 지켜본 덕분에 비가 그랬던 것처럼 버나뎃의 편이 되어 응원했다. 오드리처럼 버나뎃과 가깝지 않은 입장에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조금만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면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버나뎃을 향한 감독의 다정한 시선이 그녀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들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인데 안타깝게도 아직 원작을 읽어보질 못했다. 그래서 텍스트로 존재하는 버나뎃이 영화로 얼마나 잘 표현됐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버나뎃 역할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가 워낙 훌륭했기 때문에 충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과 말을 섞는 걸 불편해하는 게 표정에서부터 드러나서 까칠하다는 인상을 주긴 하지만, 실은 여리고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게 했다. 버나뎃의 눈시울이 붉어질 때마다 괜스레 같이 뭉클해지곤 했을 정도였다.(케이트 블란쳇 너무 좋아!)

중반 이후에는 남극을 향해가는 여정이라 빙하로 둘러싸인 바다가 내내 등장해 멋진 장관을 보여줬다. 더불어 귀여운 펭귄도 걸어 다녀서 눈이 즐거웠다. 엉뚱하고 코믹한 재미를 주다가 후반엔 감동을 주기 때문에 가족 영화로 좋을 것 같다.
영화를 재미있게 봤으니 나중에 원작도 꼭 읽어보고 싶다.

 

영화 어디갔어, 버나뎃(Where’d You Go, Bernadett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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