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리어스 맨(A Serious Man, 2009)

 

물리학 교수 래리는 너무나도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아내와 두 아이가 있고 대출이 있긴 했지만 자신의 집이 있었으며, 곧 대학의 종신 재직권을 얻을 수 있는 시기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래리의 평온한 삶이 조금씩 무너져 수습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고 말았다. 딸은 성형수술을 한다며 아빠의 지갑에서 돈을 빼가기 시작했고, 아들은 마약을 하며 학교에서 사고를 치고 다녔다. 거기다 아내는 래리의 친구와 결혼을 하겠다며 그에게 이혼을 해달라고 했고 나중엔 기가 막힌 요구까지 한다. 그리고 남동생 아서는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을 믿는 유대인 래리는 랍비를 찾아가 자신의 인생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듣고자 한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 및 개인적인 생각을 포함하고 있음

 

래리의 삶이 이렇게까지 구렁텅이에 처박힐 줄은 자신도 몰랐을 터였다. 영화 초반, 학점을 수정해달라는 학생이 두고 간 돈 봉투는 학교에서의 입지를 걱정하게 만들었고, 자꾸만 자신의 집 마당 경계선을 침범하는 퉁명스러운 이웃은 래리에게 스트레스가 됐다. 여기까지만 했더라면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몰랐다. 학생은 학년이 바뀌거나 졸업하면 그만이었고, 이웃 문제는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족과 관련된 사건들은 삶에 대한 의욕마저 떨어뜨리고 만다. 아내가 어떤 전조도 없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이혼을 해달라는 건 화가 나지만 까짓것 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래리에게 집에서 나가 모텔에서 지내라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심지어는 아내가 재혼한다던 남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장례 비용까지 지불하는 모습은 내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이런 와중에 얹혀사는 동생 아서는 사고를 치고, 아들은 TV가 나오지 않을 때만 고쳐달라며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였다. 자잘한 사고들이 자꾸만 생겨났고, 심지어는 래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던 변호사가 그가 보는 앞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기까지 한다.

 

갑작스레 몰아닥치는 불행들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악몽에 시달리며, 오늘 하루는 또 무슨 악재가 닥칠까 걱정하는 래리가 정말 안쓰러웠다. 나는 신앙이 없지만 래리가 랍비를 찾아 도움의 말을 들으려고 하는 게 이해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 랍비를 찾은 래리의 모습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첫 번째로 만난 랍비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고, 두 번째 랍비는 치과의사의 일화를 들려줬다. 스스로가 깨달을 수 있도록 말을 끝맺지 않은 두 번째 랍비의 말에 대한 래리의 반응을 통해 그는 정답, 해답, 의미 등의 정확한 결과를 얻기를 원하는 사람(이과라서?)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래리는 신이 자신에게 이러한 시련을 주는 이유가 있고, 그것을 헤아려 의미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다. 신이 주신 시련을 견디고 이겨내면 지금보다 행복한 미래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인생은 래리에게, 어쩌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도 호의적이지 않을 게 뻔했다. 지금의 고난과 역경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을 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시련을 담보로 보장된 희망찬 미래가 아니라 또 다른, 어쩌면 지금의 힘듦 따위는 누워서 떡 먹기였다고 생각할 만큼 엄청나고 강력한 절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래리뿐만 아니라 종교의 인정을 받아 성인식을 치르고 이제 막 어른이 된 아들에게도 인생이 만만치 않다는 걸 시각적 은유로 보여준다. 별다른 걱정 없이, TV 채널이 안 나오는 것에나 짜증을 내며 살았던 아이, 청소년기를 지나면 감당할 수 없는 토네이도를 맞닥뜨리는 게 어른의 삶이었다.

 

어른은 삶이 주는 시련과 고난 등의 온갖 불행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지만, 거기에 그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다는 게 영화의 핵심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리 없고, 신이 주신 가르침이나 뜻은 당연히 없었다. 인생에는 그 어떤 해답이나 의미가 존재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너무나 감정이 몰입되어 짜증이 절로 솟구쳤다. 내가 래리가 된 듯, 대체 왜 이러냐고 대신 소리치고 욕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마도 래리가 화를 내지 않고 대체로 묵묵히 받아들이는 모습만을 보여줬기 때문에 나의 분노가 더욱 치밀어 올랐던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상황이 어이없고 당황스러워서 웃기기도 했다. 대체 어디까지 가나 보자, 라는 마음이 들었다. 화가 나면서도 웃긴데 슬픈,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초반엔 심오하게 접근하는 것 같아서 긴장하며 보다가 점점 빠져들어 나중엔 “빌어먹을 인생 따위!”를 외치며 공감하게 만들었다.

 

몇 편째 보는지 모를 코엔 형제의 영화는 볼 때마다 감탄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 코엔 형제의 영화라는 것을 알고 봤음에도 끝까지 다 보고 나서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감독의 이름에 새삼 놀랐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평범하면서도 이렇게 의미 있게 만들 수 있구나 싶었다.

제법 심각할 때도 있지만 블랙코미디라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영화 시리어스 맨(A Serious Man, 2009)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