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트레인저 댄 픽션(Stranger Than Fiction, 2006)

국세청 직원 해롤드는 매일매일 정확한 숫자로 가득한 하루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출근 전에 모든 치아를 총 76회 닦고, 43초 절약할 수 있는 넥타이 매듭법을 사용하며, 매일 똑같은 걸음 수로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8시 17분 버스를 탄다. 직장에서는 매년 비슷한 건수의 일을 맡았고, 점심시간과 커피 마시는 시간조차 늘 변함없다.
규칙적인 숫자로 가득한 삶을 사는 해롤드는 언제나 혼자다. 집에 돌아갈 때도 혼자고,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혼자다. 친한 친구는 물론 연인도 없는 외로운 사람이지만, 의외로 그는 외로움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런 해롤드의 삶이 달라진 건 수요일 아침부터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알람 소리에 일어나 이를 닦던 그는 어떤 여자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마치 지금 이를 닦는 해롤드의 모습을 설명이라도 하는 듯한 문장을 말하고 있었다. 환청인가 싶어서 잠깐 멈칫했다가 다시 이를 닦는데 낯선 여자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회사에 출근을 한 후에도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중인지 일일이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꾸만 신경이 쓰여서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혹시 동료에게도 그 음성이 들리는지 물어봤지만 당연히 이상한 시선만 받게 된다.

이상한 일이 일어나 정신없더라도 해롤드는 맡은 일을 해야만 하는 직장인이었다. 회계감사를 위해 빵집을 찾은 그는 세금 일부를 내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주인 안나와 말씨름을 벌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와중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는 해롤드가 안나에게 빠져버린 것처럼 묘사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해롤드는 그 음성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만다.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해롤드는 이 상황이 이상하긴 하지만 뭔가 딱히 문제가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고는 자신만 들을 수 있는 음성이 신경이 쓰인다는 것뿐, 그 외에는 별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줄곧 들려온 그 음성이 어느 날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문장을 말하는 순간, 해롤드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동요를 느낀다.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익숙해져서 때때로 목소리가 들려와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지만, 죽음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자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집에 도착해서는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양치질을 하며 스스로 문장을 말하기도 했지만 목소리는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는 게 당연했다. 그는 아직 해보지 못한 게 많았기 때문에 죽기에는 억울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정신과를 찾았지만 의사는 뻔한 답만 늘어놓았다. 그러다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 중에 소설 주인공 같다는 말에서 힌트를 얻게 됐고, 해롤드는 문학 교수 힐버트를 찾아가 말도 안 되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네이버 영화 줄거리에 언급이 된 것과 같이 해롤드는 소설의 주인공이 맞았다. 영화 초반에 해롤드가 안나를 만나고 난 후에 등장한 의문의 캐릭터 캐런이 소설의 작가였다. 건물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뛰어내린 캐런은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상상을 하고 있었다. 소설을 쓰기 전, 모든 것을 실제처럼 상상해보며 상황을 그리는 작가였다.
문제는 캐런이 쓰는 모든 소설의 주인공이 죽는다는 것에 있었다. 주인공이 여자건 남자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건, 그녀는 도무지 주인공을 살려두지를 않았다. 약동하는 삶을 살고 있어도 어찌 됐든 모든 사람은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기 때문에 삶이란 비극이고, 삶의 완성은 죽음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해롤드는 이런 사실을 힐버트와 몇 번의 만남 후에 알게 된다. 미지의 음성이 들린다는 믿을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해롤드는 그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러다 TV에서 캐런이 인터뷰를 하는 장면을 보고 목소리를 통해 그녀가 그 음성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걸 힐버트에게 말하자 그는 가망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모든 소설의 주인공을 살려두지 않는다는 걸 문학 교수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만일 그렇다고 해도 해롤드는 이대로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 없었다. 여태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이 소설이라는 사실도 이제야 간신히 믿기 시작했는데, 전지적 위치에 있는 작가에 의해 삶이 강제로 끝나는 것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비록 해롤드는 소설의 주인공이긴 했지만, 실제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당신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있고 그마저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그 누구라도 해롤드처럼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화를 내다 이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고 하지 않을까 싶다. 운명은 모르는 게 약인데, 하물며 죽음은 되도록 멀리까지 밀어 놓고 싶은 인생의 마지막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바꿀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깨닫게 된 이후 해롤드가 보여준 모든 행동에 공감이 됐다. 이미 정해진 운명이고 죽음이라면 이 삶을 후회하지 않도록 만들어야만 했다. 그는 평범한 일상이었더라면 꿈만 꿀뿐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을 하나씩 했다. 그토록 배우고 싶던 기타를 사서 혼자 연습을 했고, 첫인상은 안 좋았지만 내내 마음이 가던 안나에게 다가가는 것은 죽음을 알고 있었기에 낼 수 있었던 용기였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던 셈이었다.

삶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소설 속 주인공 해롤드와 이번엔 주인공을 어떻게 죽일지 고민하는 작가 캐런이 만날 수 있을 것인지, 죽는 결말로 이미 정해진 운명을 과연 바꿀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그 사이사이에 그들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또 다른 등장인물 두 명이 몇 번이고 등장했다. 매번 자전거를 타고 위험하게 달리는 어린 소년과 구직 중인 듯한 여자였다. 처음엔 이 두 사람이 무슨 역할을 맡고 있는지 몰랐지만, 캐런의 시점에 등장해 어김없이 사고가 일어나는 걸로 봐서 해롤드의 죽음에 큰 영향을 미칠 캐릭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중요한 건 해롤드가 방법을 찾는 사이, 그의 실재를 전혀 알지 못했던 캐런이 그의 죽음을 드디어 정하고 타이핑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부분부터 영화는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로 흘렀다. 해롤드의 죽음으로 끝나는 소설은 더없는 명작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정도인데, 그렇다면 주인공 해롤드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관한 첫 번째 질문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여태껏 자신이 쓴 소설의 주인공들을 가차 없이 죽였던 캐런이 실재한다고 인식하지 못했던 해롤드를 만난 후에 과연 정해놓은 길을 따를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작가와 소설 속 주인공이라는, 어찌 보면 한쪽이 너무나도 불리한 이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무언가를 인식하고 난 뒤에 생기는 변화였다. 해롤드는 여태껏 자신의 삶을 인식하지 못하고 매일 그저 똑같이 흘려보냈지만,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삶을 인식하게 됐다. 그때부터 해롤드는 자신이 진짜 원했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캐런은 자신이 창조해낸 소설 캐릭터를 죽이는 데 별 감정이 없었다. 아무래도 가상의 캐릭터라 그 죽음에 죄책감을 느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재하는 해롤드를 만나면서 비록 소설 속 가상의 캐릭터일지라도 그들 나름대로의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삶과 죽음 사이의 기로에 선 두 사람의 인식이 지키던 생활 방식을 바꾸고 다시없을 영광을 포기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받아들이는 것과 차선책을 택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낯선 배우 윌 페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주인공보다 다른 캐릭터들이 훨씬 익숙한 이 영화는 이번에도 AI가 찾아준 것이다. 제목조차 처음 들어본 영화인데 평이 좋길래 아무 생각 없이 보기 시작했다.

숫자로 가득한 초반이 지나고 음성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해롤드는 아니었을 테지만 왠지 영화가 코믹스러워졌다. 그러다 죽음이 언급되면서는 이후의 내용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할 수 없었다. 특히 소설이 완성됐을 때 그 선택은 너무 덤덤해서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 후에 기어코 사고가 벌어졌어도 이대로 정말 끝일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를 포기함으로써 주어진 다른 것들에 뭉클해져서 끝날 땐 눈물이 조금 나기도 했다.

독특한 설정으로 삶에 대해 말하는 영화였다. 조금 웃기고 놀랍기도 하며, 마지막엔 뭉클한 감동까지 줘서 정말 좋았다. 죽음을 소재로 했어도 마냥 무겁기만 하지 않은 내용이고, 이런 감성적인 영화를 워낙 좋아하는 편이라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영화 스트레인저 댄 픽션(Stranger Than Fiction,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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