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윗 프랑세즈(Suite francaise, 2014)

1940년 프랑스.
파리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 마을 뷔시에 사는 루실은 남편을 군대에 보내고 시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다. 가진 재산이 많은 시어머니는 루실을 데리고 다니며 빌려준 땅과 집의 월세를 받는 일을 가르친다. 한창 전쟁 중이라 사람들의 형편이 어려워져 돈을 마련하기 힘든데도 시어머니는 사정을 봐주거나 금액을 깎아주는 일이 없다. 시어머니의 그런 깐깐한 성격은 루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 그녀는 숨이 막힌다.

파리를 점령한 독일군을 피해 피난민이 뷔시까지 오게 되자 독일군 역시 그들을 따라와 주둔한다. 독일군이 뷔시를 점령해 통치하게 되면서 각 가정은 군인들의 임시 숙소가 되어 그들이 머물 방을 내줘야 했다. 루실이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집도 마찬가지였다. 장교 브루노가 그녀가 사는 집으로 오자, 시어머니는 그를 쳐다보지도 말고 대화도 나누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브루노는 루실과 시어머니가 신경 쓰지 않도록 지내며 친절하게 대했다. 그러다 시어머니가 루실에게 금지한 피아노를 브루노가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는 걸 느낀다.

루실은 두 번 만난 남편과 3년 전 결혼했다. 그저 아버지의 뜻에 따른 결정이었기에 루실이 남편에게 여느 부부와 같은 깊은 애정이 있지는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남편에게 편지를 쓰는 게 어색할 정도여서 명칭만 남편일 뿐 그다지 살가운 사이도 아니었던 것 같았다.
루실은 남편이 군대에 가 있어서 걱정이 되는 것보다 시어머니가 자신을 압박하는 것에 더 큰 고통을 느꼈다. 음악을 공부했던 루실은 아버지가 주신 피아노를 연주하곤 했는데,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그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피아노를 치지 못하게 열쇠로 잠궈버렸다. 이런 무언의 압박으로도 모자라 루실을 데리고 세입자들을 찾아가는 건 그녀에게 더욱 힘든 일이었다. 사람들의 형편을 봐주지 않으며 냉정하기만 한 시어머니를 견디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독일군 브루노가 집에 머물게 되어 루실은 시어머니에게 한층 더 날카로운 시선을 받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독일군에게 협조를 해야 했지만 그들은 적이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행동이었고, 또 다른 이유는 며느리를 단속하는 것이었다. 마을에는 대부분이 여자였고, 남은 남자는 어린애들이나 노인 혹은 다쳐서 군대에 갈 수 없는 남자들뿐이었다. 시어머니가 무엇을 예상하고 있는지는 이전의 전쟁으로 이미 알고 있었을 터였다.

처음에 루실은 시어머니의 말대로 길에서 아는 척을 하는 브루노에게 대꾸도 하지 않지만, 시어머니가 금지한 피아노를 그가 연주하자 호기심이 생겼고 나중엔 위로를 받기에 이른다. 시대 상황으로 인한 남편의 부재와 아버지의 죽음 이후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그녀를 시어머니에게 순종하게 만들어 피아노를 잠궈버렸을 때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아마 루실에게 유일한 즐거움이었을 피아노 연주를 브루노가 들려준 덕분에 숨통이 트였고, 그가 연주하는 낯선 곡에 궁금증이 생겨 대화하면서 작곡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깐깐한 시어머니로 인해 마을 사람 그 누구와도 친하지 않았고 집에서조차 편치 않았던 루실은 다른 군인들과 달리 젠틀한 브루노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고, 브루노 또한 자꾸만 루실이 눈에 밟힌다. 같은 집에서 지내는 덕분에 눈치로 알게 되는 것과 약간의 대화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결혼을 했지만 현재진행형이거나 사랑이 충만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전쟁에 대한 생각이 비슷했다. 브루노는 군인이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말로 하진 않았지만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에둘러 표현했다.
루실과 브루노가 닮은 점이 많았기에 당연히 서로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다. 원치 않는 곳에서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기울이지 못한다는 현실이 동질감을 느끼게 했다.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 어떤 표현도 차마 하지 못했고 모든 것을 조심스러워하며 시작했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그 과정에서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고 외도로 낳은 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루실은 끝내 붙잡았던 이성의 끈이 끊어진 것 같았다. 아들이 만나는 여자의 존재를 알고, 그 만남이 결혼 후에도 이어진 사실을 시어머니가 알았다는 게 루실에겐 큰 충격과 배신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사랑 없는 결혼이라고 할지라도 그녀는 남편의 집안에 맞추고 냉정한 시어머니를 참고 있었는데,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에 의지할 데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너무나 슬퍼졌다.
루실을 이해하는 사람이라고는 독일군인 브루노뿐이었다. 그는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아는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루실은 브루노를 향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렇다고는 해도 둘 사이가 여느 연인들처럼 드러낼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조심스러웠고, 때로는 주변의 여러 영향으로 브레이크가 걸리곤 했다. 무엇보다 루실의 입장에서는 브루노가 자신의 나라를 침략해 통제하고 있는 국가의 남자였기 때문에 더 깊이 빠지지 않으려 이성을 부여잡는 것처럼 보였다. 감정이 앞서 나가더라도 더 나가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억제하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한 감정에 대한 고통은 두 사람 모두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 시대에 그곳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은 평범하게 사랑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서 후반으로 갈수록 안타까웠다.

루실과 브루노의 안타까운 사랑 외에 눈에 띄었던 건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브루노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마을 사람들은 루실을 통해 개인적인 부탁을 해댔다. 독일군이 마을에 오기 전에 불편해하며 돈을 받던 그녀를 시어머니와 똑같은 취급을 해놓고선 이제 와 온갖 부탁을 하는 게 마뜩잖았다. 어떤 부인은 피난길에 오르면서 집에 놓고 온 귀중품을 가져다 달라고 했고, 소작농의 아내는 독일군을 죽인 남편을 숨겨주면 위험하다는 걸 뻔히 알고 있음에도 루실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죽은 독일군이 나쁜 놈이라 거기까진 이해했지만, 그 남자 때문에 시장이 억울하게 죽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이기적으로만 보였다.
처음부터 루실을 아니꼬워 하던 셀린은 비밀을 들킨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는 게 그나마 솔직해 보였다. 그리고 누군가를 도와줄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시어머니가 의외의 행동을 하는 걸 보며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영화가 결말에 이르면서 한 가지 들었던 생각은 루실이 시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거였다. 독일군을 죽인 남자를 파리에 데려다주기 위해 루실이 떠나면서 시어머니에게 남긴 말이 왠지 모르게 마지막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실마저 자리를 비우면 시어머니 혼자 남게 되어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이었을 테지만, 그 말에 담긴 뜻에 루실의 자리는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태껏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살아왔을 루실이 파리로 가는 길을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새로운 의지로 보였다.

영화는 미완성으로 남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를 봐야겠다고 진작부터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원작이 미완성이라는 사실 때문에 보기를 미뤄왔었다. 내용은 대충 알고 있어서 두 사람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끝맺음이 확실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왜 이제야 봤는지 후회됐을 정도로 굉장한 여운을 남겼다. 사랑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에 공감해 두 사람이 선을 넘지 않는 게 애틋하면서 안타까웠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표현하는 작은 부분들에 감정이 깊이 담겨있다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사랑하면 안 되는 여인에게 바치는 곡이 얼마나 멋있고 우아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다가 끝나버려서 살짝 아쉽긴 했다.

배우들이 절제된 섬세한 감정을 잘 표현해 줘서 푹 빠져서 볼 수 있었다. 연기를 너무나 잘하는 미셸 윌리엄스는 이번에도 정말 좋았고, 브루노 역할의 마티아스 쇼에나에츠도 역할에 잘 어울리는 감정을 보여줬다. 출연하는 줄도 몰랐던 마고 로비가 굉장한 헤어스타일로 등장해 놀라게 만들었다.

 

영화 스윗 프랑세즈(Suite francaise,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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