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년시절의 너(Better Days, 2019)

대입 시험이 60일 남은 날, 학교에서 한 아이가 자살을 했다. 순식간에 학생들이 몰려들었지만 신고를 하기는커녕 사진을 찍어대며 대화방에 올려 채팅이나 할 뿐이었다. 유일하게 첸니엔만이 죽은 아이에게 다가가 체육복을 덮어 가려주었다. 학생의 자살로 학교에 경찰이 와서 사건을 조사하게 되면서 첸니엔은 교무실에 불려간다. 그 후부터 첸니엔은 죽은 아이 대신 괴롭힘을 당하는 타깃이 되었다.

학교가 끝난 늦은 밤에 집으로 돌아가던 중 맞고 있던 베이를 도와주고 안면을 튼 첸니엔의 앞에 그가 나타난다. 마침 힘든 하루를 보낸 터라 그녀는 무작정 베이의 오토바이에 올라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학교에서 괴롭히는 것으로도 모자라 나중에 집 앞까지 찾아온 그들 때문에 너무나 힘이 든 첸니엔은 베이에게 자신을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그때부터 첸니엔은 허름한 판잣집에서 혼자 사는 베이의 집에 머물게 됐고, 베이는 첸니엔이 등하교 하는 길을 뒤에서 묵묵히 따라다닌다.

모범생인 첸니엔과 양아치나 다름없는 베이는 겉으로 보기엔 전혀 달랐지만 부모에게 보호받지 못한다는 점이 같았다.
첸니엔에겐 엄마만 있고 아버지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는데, 엄마가 불법적인 일을 한다는 게 그녀를 힘들게 했다. 엄마가 어딘가로 일을 하러 가서 늘 혼자 지내는 첸니엔은 작은 불빛에 의지해 공부를 하면서 엄마를 사기꾼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아무도 없는 척 숨어있었다. 그녀에게는 이런 생활이 너무나 익숙한 듯했다. 그럼에도 첸니엔은 오랜만에 집에 온 엄마에게 불평을 하지 않았고, 두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그녀가 베이징 대학에 가서 성공하는 것뿐이라 생각하며 공부에만 매달렸다.
베이의 가족에 관한 사연은 영화가 중반쯤 됐을 때 등장했다. 그 역시 아버지는 없었고 엄마만 있었는데, 첸니엔의 엄마와는 달리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베이를 자신의 앞길을 막는 존재로 여겼다. 너무 어릴 때 그 사실을 깨달아버린 베이는 떠날 수밖에 없었고, 그때부터 학교도 다니지 않으며 어린 나이에 벌어먹고 살 수 있는 길을 택했다.
가장 가까이에서 10대 아이들을 보호해 줘야 하는 부모의 부재로 인해 그들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른의 손을 빌리기보다는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만 했다.

처음엔 첸니엔과 베이의 사는 세계가 너무나도 달라 어색해하지만 이내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베이는 첸니엔을 지켜주면서, 첸니엔은 베이의 존재에 의지하게 되면서 둘 사이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었다. 서로 다르다는 건 그들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어쩌면 함께 할 수도 있을 미래를 조심스레 그려보기도 한다.

살아가는 것조차 힘겨운 그들에게 나쁜 일이 더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베이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첸니엔의 곁을 지키지 못한 단 하룻밤 동안 그녀는 괴롭히는 무리들로부터 끔찍한 짓을 당한다. 괜찮지 않으면서도 괜찮다고 서로를 다독이던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하면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위협받게 된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도입 부분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무거운 이야기를 할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대입 시험을 준비 중인 학생들과 그들 중 괴롭힘을 당한 한 아이의 자살,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연관되어버린 첸니엔이 등장했고 이내 베이도 등장했다.

첸니엔은 왜소하고 유약해 보이기만 했는데 그녀의 내면은 외면보다 단단하고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길에서 맞고 있던 낯선 베이를 보고 신고를 하려고 한 것에서 그녀의 강단이 느껴졌다. 외진 곳이라 사람이 다니지 않고 베이 한 사람을 구타하는 남자가 세 명이나 됐으니 작고 연약한 여학생의 입장에서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무서울 게 당연했다. 하지만 첸니엔은 그런 것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신고를 하려고 했다. 안타깝게도 신고는 하지 못하고 놈들에게 들키는 바람에 험한 꼴을 당할 뻔하긴 했으나 베이 덕분에 그 이상의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외유내강의 면모를 지닌 그녀였기에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해도 꿋꿋하게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당하는 괴롭힘은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건이 등장할 때마다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괴롭히는 것들은 첸니엔이 거슬린다는 이유로 온갖 폭언, 폭행을 비롯해 감추고 싶은 치부까지 공개적으로 드러내 괴롭히고 또 괴롭혔다. 그 아이들은 사건이 심각하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고, 부모에게 배운 것처럼 돈이면 다 해결된다고 알고 있었다.
중국이 배경인데 어쩌면 우리나라와 다를 게 하나도 없던지 울화통이 터졌다. 아마도 그 아이들이 처벌을 받지 않는 방법도 우리나라와 비슷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애초부터 자기가 같은 학교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았더라면 “그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기 때문에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에 불쌍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건 때문에 첸니엔과 베이가 더 힘들어질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만 들었다.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위기가 닥치면서 사건에 관련된 진실 역시 드러났다. 그 진실을 담보로 한 첸니엔과 베이의 약속이 얼마나 슬펐는지 모르겠다. 영화 초반에 베이가 첸니엔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이 그렇게 이어졌는데, 그 약속에는 이전까지 말하지 않았던 미래에 대한 희망도 담겨있었다. 그녀를 지켜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베이의 마음이 너무나 애달팠다. 첸니엔은 베이가 지켜준 현재를 위해 주변에서 아무리 흔들어도 꿋꿋하게 버티지만, 베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온갖 괴롭힘을 당해도 강하게 버티던 그녀는 그토록 원하던 목표보다 베이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베이는 첸니엔을 지켜주겠다고 했고 그녀에겐 세상을 지키라고 했는데, 이제는 첸니엔의 세상이 베이가 존재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녀 역시 그를 지켜준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과 같은 아이를 지켜주는 것도 세상을 지키는 일이었다.
애틋함을 넘어 너무나 아팠던 그들의 사랑이었다. 단 한 번도 애정 어린 말을 입에 담지 못해서 슬프고 또 슬펐다.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카피가 들어간 화사한 포스터만 봤을 땐 10대의 풋풋하면서 나름의 애틋한 멜로를 예상했었지만, 제법 무거운 내용이라고 들어서 영화가 궁금해졌었다. 아니나 다를까 초반부터 학생의 자살 사건 이면에 학교 폭력이 있다는 게 밝혀지고, 그게 주인공인 첸니엔에게 이어지는 걸 보면서 괴롭히는 아이들의 나쁜 짓은 어디나 다 똑같다는 생각에 끔찍하고 지긋지긋했다. 반성의 기미는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까지 징그럽게 똑같았다.
다행히 중국에서는 2010년대에 이르러 학교 폭력과 관련된 법안을 제정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대체 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요즘에도 이게 애들이 할 짓인가 싶은 학교 폭력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되는데, 우리나라도 그런 법안을 마련하거나 아니면 소년법을 없앴으면 좋겠다. 나쁜 짓을 했으면 나이에 상관없이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아무튼 영화를 보는 동안 화가 나는 지점이 너무나도 많았고 그 외에는 안타깝고 슬픈 감정을 많이 느꼈다. 특히 후반에는 울다가 멈췄다를 반복하면서 봤다. 정말 오랜만에 멜로/로맨스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운 것 같다. 물론 순수 멜로 장르는 아니지만 말이다.

중국 영화를 거의 안 본다고 할 수 있는 정도라 주동우 배우를 이 영화로 처음 봤는데, 20대 후반의 나이에 고등학생 연기를 하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만큼 첸니엔 역할에 정말 잘 어울렸다. 유약하면서 강단 있는 상반된 분위기를 너무나 잘 표현했다. 정말 매력적이라 출연한 다른 영화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베이 역할의 이양천새 배우는 첫 주연작이라는 이 영화에서의 연기를 잘 소화해냈다. 영화를 보고서 찾아보니 생각보다 잘생긴 얼굴이라 조금 놀랐다. 영화 내내 상처투성이인 얼굴을 하고 있어서 원래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할과 잘 어울리는 이미지의 배우들이 출연해 사회적 의미와 애틋한 사랑까지 담아 푹 빠져서 본 영화였다. 결말도 극으로 치닫지 않아서 더 좋았다.

 

 

영화 소년시절의 너(Better Days,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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