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 얼간이(3 Idiots, 2009)

아버지의 뜻에 따라 태어났을 때부터 공학자의 삶이 정해져 있었던 파르한, 아픈 아버지와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어머니, 가난해서 결혼도 못 한 누나를 위해 무조건 성공해야 했던 라주가 인도 최고의 대학인 ICE에서 기숙사 룸메이트로 만났다. 낯선 곳에서 만난 그들은 서로의 첫인상이 썩 좋다고는 할 수 없는 듯했다.
이어진 신입생 환영회에서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선배들이 시키는 신고식을 해야만 했다. 부끄럽지만 선배의 명을 거스르면 왠지 큰일이 날 것 같아 파르한과 라주는 어쩔 수 없이 따른다. 그때 뒤늦게 도착한 신입생 란초가 나타난다. 늦었다고 뭐라고 하는 선배들을 멀뚱멀뚱 바라만 보던 란초는 그들이 시키는 신고식을 하기 싫어 방 안으로 도망친다. 문을 열라고 쫓아온 선배의 으름장에도 굴하지 않던 란초는 공학도다운 방법으로 골탕을 먹여 유명해진다. 파르한과 라주는 란초와 어울리며 온갖 사건을 저지른다.

총장 비루는 자신의 교육 방침에 반기를 드는 란초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신입생들을 모아놓고 처음으로 설교를 하는 자리에서부터 거슬렸고, 이후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났을 때 란초의 말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란초의 굳은 심지를 꺾을 수 없었던 총장은 그와 가까운 파르한과 라주를 괜히 몰아세운다.

영화의 시작은 비행기에 탄 파르한이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는 장면이었다. 당장이라도 내려야 할 중요한 일이 생긴 듯 불안해하며 승무원을 불렀지만, 이제 막 이륙한 비행기를 멈출 방법은 없었다. 그러다 파르한이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자 비행기는 어쩔 수 없이 회항하여 파르한을 휠체어에 태워 바깥으로 나왔다. 기절한 줄 알았던 파르한은 이제 괜찮다며 낼름 도망쳐서 누군가를 마중 나온 차를 잡아타고 라주에게 연락해 함께 대학 옥상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소음기”라는 별명을 가진 차투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급하게 온 파르한과 라주에게 자기 자랑을 먼저 늘어놓더니 연락이 끊긴 란초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함께 가자고 말했다.
파르한과 라주에게 란초는 연락이 끊겨 걱정되고 보고 싶은 친구였으나 차투르에게는 반드시 꺾어야 할 경쟁 상대인 것 같았다. 10년 전에 악을 쓰며 약속한 날짜를 잊지 않고 살면서 그들을 불러내 자신이 이렇게 보란 듯이 잘 살고 있다고 자랑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세 사람의 여행으로 란초를 찾는 현재를 보여줬고, “세 얼간이”라 불리던 친구들이 대학에 다닐 때 어떤 사건들을 일으키고 다녔는지 과거 회상 장면이 길게 이어졌다.

선배를 골탕 먹인 장면에서부터 란초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그의 굳은 심지는 교수나 총장을 가리지 않았다. 첫 수업에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는 교수에게 란초는 나름의 답을 제시했지만, 교수는 간단하게 설명한 란초의 답보다 문장을 통째로 외운 차투라의 대답을 정답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총장은 자신이 대답하기 어려운, 아마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질문을 하는 란초가 눈엣가시로만 보였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차투라 같은 학생이 훨씬 편할 것이다. 교수의 말을 따르며 잘 보이기 위해 애를 쓰고 호기심이나 의문 따위 없이 책만 파는 그런 학생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학생들은 마치 경주마처럼 주어진 틀에서만 바라보는 게 습관처럼 길들여져 창의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곤란해질 일이 없었다.

반면에 란초는 다른 학생들과 달랐다. 주어진 것을 이대로 보라고 시킬지라도 다른 방향에서 보며 생각했다. 선배가 성공시키지 못해 쓰레기통에 처박은 기계를 여러 각도로 손을 보며 연이은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총장의 입장에서는 란초가 워낙 유별난 학생이라 가르치기 어려웠기 때문에 너도 당해보라는 듯 강단 위에 세웠지만, 그는 기지를 발휘해 총장의 콧대를 꺾어놓았다.
란초의 행동을 보며 주입식으로 이루어지는 교육 과정이 창의적인 사고를 죽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어떤 문제가 잘못됐을지라도 의문을 가지기는커녕 일단 책을 펼쳐보며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이해하기보다는 무조건 외우는 암기식 교육에 길들여져 있었다.(암기 과목을 훨씬 잘 했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대학이 사회에 도움이 될 생산적인 사람을 만들어내는 게 아닌 공장처럼 똑같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찍어내 틀에 가둬놓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란초를 별난 학생으로 취급하다 급기야는 문제 학생으로 낙인을 찍어 쫓아내려고 하는 것이었다. 란초가 자신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게 불편하고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란초의 행동으로 깨닫게 하는 건 비단 교육뿐만이 아니었다. 인생에 대해서도 틀에 가둬지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정했다는 이유로 공학자가 되어야만 했던 파르한은 사진에 훨씬 관심이 많았고 또 좋아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자신의 학업을 위해 모든 것을 양보하고 헌신했기 때문에 뜻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라주는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다. 이제 막 대학에 들어왔을 뿐인데 시험에 전전긍긍해 하며 먼 미래를 생각할 정도였다. 안달복달해야 하는 라주의 사정은 몇 번의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더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리고 그들과는 달리 여유로운 가정에서 걱정이 없이 자란 줄로만 알았던 란초 역시 크나큰 비밀을 숨기고 있었다.

인생도 주입식 교육의 영향인 듯 시키는 대로 향해 가며 그 길 이외에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았다. 인생은 자신의 것인데 나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바람과 가정을 일으키겠다는 일념으로 살아갔다. 너무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온 탓인지 처음엔 란초의 말에 주저하는 모습을 먼저 보였지만, 란초 역시 어려운 선택을 앞두고 친구들에게 내기하는 식으로 제안하면서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깨닫게 된다.
선택의 여지가 없거나 어려운 길이기도 했지만, 란초의 뜻에 따라 라주와 파르한의 선택으로 맞이한 그들의 현재는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란초 같은 사람이 정말 좋은 친구라는 걸 느꼈다. 란초의 영향은 친구들에게만 그치는 게 아닌 총장과 총장의 딸 피아, 갓 태어난 손자를 비롯해 심부름꾼이었던 밀리미터에게까지 이어졌다.

아무리 자식이나 손자라도 각자 살고 싶은 인생, 이루고 싶은 꿈이 있기에 함부로 간섭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남들에게 부끄럽다고 해서 영 아닌 상대와 지속적인 만남을 이어가는 것도 자신의 인생을 망치게 되는 지름길이었다. 그리고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은 실속이 없었다. 물론 스스로가 만족한다면 별로 상관없긴 하지만..
무엇보다 나의 행복과 만족이 최우선이어야 했다. 란초와 친구들은 성공까지 거머쥔 특별한 사례이긴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내가 떳떳하고 행복하면 그만이었다. 내 인생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니 말이다.

워낙 유명한 영화인데 줄거리조차 찾아볼 생각을 안 했었다. 인도 영화는 본 적이 없어서 좋은 평이 많아도 왠지 손이 안 갔던 것 같다. 그리고 인도 영화는 뜬금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뮤지컬이 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탓인지도 모른다.
이번에 마음먹고 보려는데 감독판이 있길래 살펴보니 러닝타임이 2시간 51분이나 됐다. 너무 길어서 걱정했는데 중간에 두 번 정도 짧게 끊어본 걸 제외하고 쭉 이어서 봤을 만큼 내용이 재미있었다.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부분이 몇 번 등장하긴 했지만 대체로 상황에 잘 어울렸고, 인생의 길이나 행복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는 내용이 좋았으며 코믹한 장면 역시 소리를 내서 웃었을 정도로 즐거웠다. “알 이즈 웰”이라는 후크에 맞춰 노래를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탓인지 멜로디를 자꾸 흥얼거렸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영화답게 매력적인 요소가 많았다. 내게는 낯선 인도 영화지만 우리나라의 문화나 교육 문제와 비슷한 점이 있어서 여러 부분에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재미도 있고 감동도 주는 좋은 영화였다.

 

영화 세 얼간이(3 Idiot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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