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자매(Three Sisters, 2020)

 

 

어릴 때 함께 놀며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도 했고, 어떨 땐 가장 의지가 되는 존재이기도 했던 세 자매는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같은 환경에서 자랐어도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는 너무나 다르기 마련이라 세 자매 역시 살아가는 환경, 성격까지 완전히 다르다.

첫째 희숙은 작은 꽃집을 운영하며 반항기 가득한 딸 보미와 살고 있다. 남편은 집에 들어오는 둥 마는 둥 하며 돈 문제로 여러 번 속을 썩이는 바람에 동생들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다. 희숙은 안 그래도 소심하고 다 자기 잘못이라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인데 이런 이유 때문인지 동생들 볼 면목이 없어 연락조차 하지 못한다.
둘째 미연은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남편은 대학교수이고, 두 아이들은 바르게 잘 자라고 있었으며, 얼마 전에는 신도시에 넓은 평수 아파트를 분양받기도 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만 완벽했지 속은 곪아서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극작가인 셋째 미옥은 요즘 따라 글이 잘 안 써져서 대낮부터 술을 마시며 밥은 제대로 챙기지 않는다. 툭하면 술에 취해 미연 언니에게 전화해 술 주정을 하며 귀찮게 한다. 거기다 남편과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의붓아들은 자신을 많이 이상한 아줌마로 생각하는 것 같다.

 

 

모두 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있는 나이의 세 자매들이었는데, 중년쯤이 되었을 그들이었어도 삶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 어렵기만 했다. 남편이 속을 썩이고 자식의 반항 또한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일들이 세 사람을 괴롭고 힘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당연히 서로에 대한 걱정까지 더해져 바람 잘 날 없는 나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 자매와 비슷하게 날마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살아간다는 면에서 평범한 우리네의 삶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걱정거리는 때때로 평범의 범주를 넘어선 것이라 놀라움을 주기도 했다.

각자의 삶에 갑자기 나타난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이 성격에 따라 제각각이라 안타깝기도 했고 때로는 코믹한 분위기를 풍겼다.
학교에 가는 의붓아들을 배웅하고 숨겨둔 소주를 꺼내 마시던 미옥은 거침없는 성격답게 문제에 대응하는 방법도 거침이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은 필터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입으로 흘러나왔고, 행동 역시 일단 저지르고 보는 타입이었다. 덕분에 미옥이 등장할 때마다 웃음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가만 보면 미옥이 정말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아 매번 술 주정을 듣는 미연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조금 짜증이 날 때도 있었으나 뒤끝이 없고 의리가 있었다는 점에서 조금은 든든한 캐릭터였다.
둘째 미연은 어릴 때부터 다녔던 교회를 지금까지도 꾸준히 다녀 신실한 믿음이 있었다.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자로 활동하는 집사인 걸 보면 교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미연과 남편이 등장했을 때부터 어떤 걱정이 그녀를 힘들게 할지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조한철 배우님 죄송..) 재미있던 건 미연의 반응이었다. 믿음을 가진 교인답게 겉으로는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하려고 하며 지켜보다가 확실해지자 돌변해 당연히 그랬을 법한 행동을 했다. 그리고 후반엔 상여자의 면모를 보여주며 미연이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가 아닌 부와 두뇌로 사람을 조지는 스타일이라는 걸 보여줘서 통쾌했다.
두 동생들과는 다르게 희숙은 제일 안타까웠다. 남편은 돈만 가져가는 돈벌레였고, 딸 보미는 보는 사람조차도 부담되는 반항을 하고 있었다. 원체 소심했던 희숙에게 버거운 가족들이었기에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마다 안쓰러워서 혼났다. 거기다 희숙에게는 짐이 하나 더 얹어졌기에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희숙이 삶을 사는 데에는 그 어떤 희망도, 재미도 없는 것 같아서 가장 마음이 쓰였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이렇게 세 자매의 가정에서 일어난 각각의 문제들을 중심으로 흘러가며 해결을 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러다 후반에는 해결이 됐든 안 됐든 일단 제쳐두고, 세 자매의 가족 모두 아버지의 생신 기념으로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고향집으로 간 장면을 통해 그녀들에게는 교회에 열심히 다녀 장로가 된 아버지와 역시나 비슷한 위치에 있을 어머니, 그리고 마음이 아픈 동생 진섭이라는 또 다른 가족들이 있다는 걸 보여줬다. 그리고 영화 초반에 잠깐 등장한 장면을 통해 예상할 수 있었던 세 자매가 공통으로 소속된 가족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진 않았다는 점에서 참 다행이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리와 아이들의 뒷모습, 심지어는 담배를 피우는 남자의 하관을 보며 고통을 예상할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알 수 없었던, 교회를 다니는 사람의 실체가 얼마나 가식적인지 치가 떨렸다. 더 화가 났던 건 동네 사람의 반응이었다. 오래전이고 아마도 시골 마을이라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 정도로 동네 사람들은 가까웠을 텐데, 미연의 한마디 말에 버럭 소리를 지르며 하는 말이 분통 터졌다. 옛날에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게 당연했을 테지만 요즘 같으면 어림도 없을 일이었다. 오히려 묵인했다고 손가락질 받을 행동이었다.

이렇게 어릴 적 폭로로 영화의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그때 아이들이었던 자식들은 중년이 되어 제 아이를 기르고 있는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어떤 상처는 오랫동안 잊을 수 없기도 했다. 늘 미안하다는 말이 버릇처럼 나오게 된 희숙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기도를 했던 미연도, 어려서 당시의 상황만 기억하고 있던 미옥 모두에게 어떻게든 상처로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들의 울부짖음에 가여운 어머니와 빌어먹을 아버지는 일단 이 자리를 피해보고자 애를 썼는데, 그런 와중에 여태껏 희숙의 속을 썩이기만 했던 보미가 내질러줘서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른다. 어른들은 사과를 할 줄 모른다는 보미의 말에 깊이 공감하기도 했다. 애초에 그런 식의 잘못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만약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사과를 해야 된다고 본다.

 

 

축하하는 자리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 파투가 났어도 남매, 자매들끼리의 정은 여전히 돈독했다. 아마 같은 경험을 했다는 점에서 서로의 사이가 단단해져 부서지지 않는 걸지도 몰랐다. 그런 모습이 많이 공감됐다.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가 다양하게 등장한다는 점에서 영화를 생기 넘치게 만들었다. 세 자매 각각의 캐릭터도 매력 있었는데, 그녀들의 가족들 역시 인상적이었다. 보미는 좀 미웠다가 그래도 딸이구나 싶었고, 미연의 남편은 중간에 적반하장이라 정말 화가 났다. 욕이 막 나오려는 걸 참고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미옥의 남편은 너무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 나중엔 귀엽기도 했다. 미옥의 성질머리를 다 받아줄 정도로 착하고 순한 사람인데 중반 이후 어떤 장면에서 의붓아들과 함께 안쓰러우면서도 웃음이 터지게 만들었다.

세 자매를 연기한 배우들의 자연스러움 덕분에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 김선영, 문소리, 장윤주 세 배우 모두 인상적이었고 이미지에 잘 어울리는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나 장윤주 배우는 <베테랑> 이후 두 번째 연기인데 너무 잘 소화해내서 놀랐다. 쉽지 않은 돌아이 역할인데 누가 보면 평상시 모습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연기를 보여줬다.

포스터로는 예상할 수 없는, 조금은 심각한 내용도 있는 영화였지만 충분히 인상적이었고 좋았다.

영화 세자매(Three Sisters, 2020)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