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븐(Seven, 1995)

은퇴를 앞둔 베테랑 형사 서머셋의 후임으로 젊은 형사 밀스가 전근을 온다. 밀스가 이곳에 오기를 바랐다는 말에 서머셋은 그를 이해할 수 없다. 매일같이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이곳에 오랫동안 살았던 서머셋은 이젠 더 이상 참기 힘들어져서 은퇴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머셋이 은퇴하기 전 일주일 동안만 밀스와 임시 파트너가 되기로 한 월요일부터 사건이 일어났다. 집에서 스파게티에 코를 박고 죽은 고도 비만 남자를 시작으로 화요일에는 유명한 변호사가 사무실에서 살해를 당했다. 변호사 사무실 바닥에 피로 “탐욕”이라는 단어가 쓰여있는 걸 본 서머셋은 뭔가를 예감하고 비만 남자의 집을 다시 찾았다가 냉장고 뒤에 숨겨진 “탐식”이라는 단어를 발견한다.

이제 막 전근을 온 밀스와 은퇴를 앞둔 서머셋이 사건을 마주했을 때부터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했다. 범죄가 빈번히 일어나는 도시에서 또다시 범죄를, 그것도 성서의 7가지 죄악을 바탕으로 한 연쇄살인이 예고되고 있었기 때문에 서머셋은 지긋한 피로감을 느꼈다. 반면에 밀스는 형사가 된 지 몇 년 안 되기도 했고 이 도시에 그토록 오고 싶었다고 말했었는데, 오자마자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 의욕이 넘쳐흘렀다. 그래서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서머셋은 사건을 맡지 않겠다고 했고, 밀스는 자신에게 맡겨만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높으신 분의 입장에선 두 사람 모두 필요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모든 것에 꼼꼼한 스타일인 베테랑 서머셋이 열정만 가득한 밀스를 다독이며 가르쳐줬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사건을 수사하면서 서로가 보지 못한 부분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두 사람이 판이했기 때문에 의견 충돌이 있었는데, 밀스의 아내 트레이시가 저녁 식사에 서머셋을 초대한 일을 계기로 둘은 파트너다운 관계로 발전했다. 밀스의 과도한 열정을 조금은 진정시켜 줄 수 있는 트레이시의 차분함이 서머셋도 편안하게 했다. 그리고 트레이시가 이 도시에서 일하기를 그토록 바랐던 남편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서머셋에게 털어놓음으로써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서머셋에게는 그 공감대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했기에 함께 일하는 밀스에게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안정적으로 변하면서는 본격적으로 사건 수사에 집중되었는데, 문제는 범인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지문 등의 흔적은 물론 다음 타깃이 누가 될 것인지도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오로지 7가지 죄악만이 단서였던 터라 수사에 난항을 겪지만, 형사로 오랫동안 일한 서머셋이 정보원의 도움을 받아 실마리를 잡아냈다. 하지만 치밀하고 눈치 빠른 범인을 눈앞에 두고도 놓치고 말았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존 도”라고 명명된 범인은 형사들의 손에 잡히기보다는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자신이 컨트롤하기를 바랐다. 마치 이 연쇄살인이 그에게는 천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계획하고 실행하고 변수에 맞게 대처했다. 그것도 꽤나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이 범죄를 다듬어 그에게는 예술에 가깝도록 만들어냈다. 완벽을 기하는 이 사이코패스에게 연쇄살인은 운명이었고 인생의 목표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당연히 그 누구도 존 도에게 죄악을 저지른 타인을 심판할 권리를 주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될지라도 심판은 법이 하는 것일 뿐 평범한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하물며 존 도는 탐식, 탐욕, 나태, 분노, 교만, 욕정, 시기라는 7가지 죄악을 근거로 사람을 살해했는데, 그것은 생활윤리 혹은 도덕적, 양심적 기준에 의한 것이라 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었다.

존 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기 자신도 시기라는 죄악을 저질렀다며 심판해 주기를 바랐다. 트레이시와 밀스가 미처 몰랐던 태아까지 죽임으로써 객관적이어야 하고 사사로운 감정을 개입시켜선 안 되는 형사에게 법과 복수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들었다. 밀스가 존 도를 죽인다면 그의 계획대로 7가지 죄악이 타인의 손에 의해 모두 처벌받는 것은 물론 밀스까지 또 다른 죄를 짓는 것이 된다. 존 도의 계획이 완벽하게 성공하는 셈이었다. 반대로 밀스가 그를 죽이지 않는다면 계획은 미완성으로 영원히 남게 되지만, 그건 밀스의 입장에서 한스러울 일이었다.
이 분기탱천할 상황에서 존 도를 죽이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아무리 덕을 쌓은 성인군자라도 이건 도저히 안 죽이고는 못 배길 일이었다. 그래서 존 도의 계획은 완벽하게 마무리되어 적어도 밀스에겐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게 된다.

어쩌면 존 도는 사람은 누구나 죄를 저지르고, 또 저지를 수 있다고 말하는 건지도 몰랐다. 극단적 상황에서 당연히 복수라는 선택을 하는 밀스는 물론, 온갖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 도시를 벗어날 생각뿐인 서머셋 역시 회피라는 일종의 양심에 근거한 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법적인 처벌을 받는 자만이 죄인이 아닌, 일상에서 사소하게 넘기곤 하는 일들이 죄가 되기에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평등했다.
존 도의 입장에서 이렇게 생각해보긴 했지만 암만 봐도 그는 말이 안 통하는 미친 사이코패스다. 계획적인 범죄에 사람의 심리마저 완벽하게 파악해서 더 무섭기도 하다.

1995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스릴러 명작으로 유명하다. 무려 25년 전 영화지만 아직까지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이 영화로 데이빗 핀처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에는 미성년자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성인이 된 20대 초반에 비디오로 빌려봤었는데, 문득 다시 보고 싶어서 감상했다.

수사 과정은 가물가물했어도 범인과 결말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봤는데도 몰입감이 엄청났다. 짜임새 있는 과정과 단서들, 후반으로 가면서는 몰아치는 분위기까지 정말 굉장했다. 거기다 배우들의 연기는 두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 모든 배우가 인상적이었지만 존 도 역할을 맡은 케빈 스페이시가 독보적이었다. 영화의 후반 30분만 출연하는데도 존재 자체가 압도적이었다.(그러고 보니 반전 영화 범인 전문이네.) 마지막에 벼랑 끝에 몰린 브래드 피트의 연기 역시 대단했다.
특히 인상적인 건 처음 봤을 땐 눈여겨보지 않았던 오프닝 시퀀스였다. 존 도의 범행을 기록하는 과정을 담은 오프닝이 배경음악과 어울려 정말 환상적인 영상을 만들어냈다.

시 봐도, 다 알고 봐도 푹 빠져서 볼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길이 남을 스릴러를 만들어낸 데이빗 핀처 감독의 연출력에 다시금 감탄했다.

 

영화 세븐(Seven,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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