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SAMJIN COMPANY ENGLISH CLASS, 2020)

1995년, 삼진전자에 입사한 지 8년이 된 동기 자영, 유나, 보람은 고졸이라는 이유로 만년 사원 신세다. 후임으로 들어온 일 못하는 대졸 사원이 대리로 승진을 했어도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지킬뿐이다. 그러던 차에 고졸 사원들이 토익 600점을 넘기면 대리로 승진을 시켜주겠다는 공고가 난다. 기회다 싶어서 세 사람은 아침 일찍부터 토익 강의를 들으며 대리가 될 꿈에 부푼다.

어느 날 자영은 최동수 대리와 함께 삼진전자의 부품 공장에 심부름을 갔다가 마을로 이어지는 하천에 폐수가 방류되는 걸 목격한다.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을 보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 자영은 동수 대리에게 자신이 만든 보고서를 건네주며 홍수철 과장에게 대신 보고를 해달라고 말한다. 성격은 뭐 같아도 일처리는 확실한 홍 과장 덕분에 폐수 검사가 진행되지만, 영 믿을 수 없는 결과가 나온다.

입사 8년 차였지만 그녀들의 주 업무는 뒤치다꺼리였다. 출근하자마자 하는 일은 사무실 청소였다. 전날 야근한 직원들이 먹고 치우지 않은 음식물을 처리하는 것부터 책상을 닦고 청소를 하고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까지 했다. 사무실 청소가 끝나면 다 함께 모여 출근할 직원들의 커피를 타는 일도 했다. 담당 부서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온갖 잡일은 그녀들의 몫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잡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영은 대리부터 과장, 부장이 찾는 문서를 비롯해 모든 것이 어디에 있는지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자영이 없으면 사무실에서 뭘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잡다한 지식이 많고 센스가 있는 유나는 소속된 마케팅팀에 딱 맞는 인재였는데 그녀의 아이디어를 대졸 사원이 가로채는 걸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학 올림피아드 우승 출신인 보람은 회계팀이라 동기들보다는 그나마 나은 상황이었지만, 영수증 금액이 안 맞는 것을 왜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지 짜증이 난다.

능력이 좋아도 회사에서는 하찮은 취급을 받았다. 혹여 결혼 후 임신이라도 하면 그대로 퇴사해야 했고, 회사에 무슨 일이 생겨 감원을 해야 될 때도 가장 먼저 잘릴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열심히 했다. 냉소적인 유나 역시 동기들 앞에서는 그만둬도 상관없을 회사라고 말하곤 했지만 정작 중요한 회의 자리에서는 직원들의 발언을 귀담아들으며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들은 폐수 방류 사건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일개 사원인 그녀들에게 회사에선 그 무엇도 해주지 않았지만,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가 나쁜 일을 하고 있는 게 싫었다. 정직하고 떳떳하게 일하고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거라 여겨졌다.

하지만 그녀들이 폐수 방류 사건을 조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회사의 말단 직원이라 보안 문서나 임원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하다못해 폐수 검사를 시행한 대학 연구소에 가더라도 번복된 업무 처리에 의심을 받기까지 했다. 거기다 이 사건이 어느 선에서 내려온 지시인지 알 수 없다는 점도 그녀들의 입지를 위태롭게 했다.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했기에 한계의 벽에 번번이 부딪혔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의외의 인물이 연루되어 있다는 게 밝혀져 조금 놀라게 했다. 여태 보여준 캐릭터의 이미지를 뒤집어 뒤통수를 친 셈이었다. 그런가 하면 등장했을 때부터 나쁜 사람이라는 걸 직감한 캐릭터도 있었다. 그 배우의 출연작 중 최근에 본 작품에서 착한 역할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이 영화에서는 나쁘게만 보였다.(죄송스럽게..)

고졸 말단 사원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너무나 작은 것들이 모이면 큰 연대가 된다는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같은 고졸 사원임에도 다른 부서의 동료들과 서로 견제하기도 했던 그녀들은 진짜 위기가 닥쳤을 때 힘을 모아 모두 같은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영화 후반에 결정적 장면에서도 작고 작은 힘이 모이면 하나의 커다란 힘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
당연히 해피엔딩일 거라 예상했기에 한 치의 오차를 벗어나지 않는 결말이었지만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좋았다.


영화의 배경이 1995년이기 때문에 패션이나 메이크업, 유행어까지 그 시대를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보였다. 어렸을 때 엄마 화장대에서 본 브라운 계열의 립스틱, 칙칙한 검붉은 립스틱 색깔이나 얇은 갈매기 눈썹이 눈에 띄었다. 패션은 좀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그때 유행을 재현해내려고 한 것 같다. 가장 많이 웃음이 터졌던 부분은 유행어였다. 내가 써 본 적이 있고 들어본 적도 있는 유행어가 나와서 너무 반갑고 재미있었다.

주연배우 세 명 모두 90년대 이후 출생인데도 그 시대를 잘 표현해 줬다는 생각이 든다. 촌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예쁜 것 같다고 느껴지는 레트로였다. 그리고 배우들이 가진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정의를 위한 오지랖, 의리 있는 깍쟁이, 꺼벙한 수학 천재라는 세 캐릭터의 조화가 좋았고 연기 또한 좋았다.
특히 박혜수 배우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엄청 어리숙해 보이는데 숫자 앞에서는 스마트한 모습의 반전이 돋보였다. 세 캐릭터 중 가장 감성적이라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서 박혜수 배우가 연기한 보람이 울 때 같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실 이 영화는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던 작품이라 아무 생각 없이 보게 됐다. 당일에 예매를 취소할까 말까 고민까지 했을 정도였다. 기대치가 0이라 그랬는지 예상외로 재미있게 봤다. 물론 좀 의아한 부분이 몇 장면 있기는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유쾌하고 통쾌한 결말, 의미 있는 내용과 매력적인 캐릭터 덕분에 괜찮게 볼 수 있었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SAMJIN COMPANY ENGLISH CLAS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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