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빈폴(BEANPOLE, 2019)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의 레닌그라드.
참전했던 이야는 의병 제대 후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전쟁 중에 얻은 병 때문에 때때로 온몸이 굳어 얼마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옆에서 말을 걸어도, 몸을 흔들어도 이야는 스스로 깨어나기 전까지는 그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그녀의 증상을 잘 알고 있는지 돌아올 때까지 그저 내버려 두는 게 익숙했다.

하지만 그 병으로 인해 이야는 감당하기 힘든 슬픈 사건을 겪게 된다.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말할 수 없던 그 일 직후, 전우 마샤가 돌아와 두 사람만 알고 있던 비밀과 슬픈 사건이 연결되어 그녀들이 삶에 명분을 둘 구실을 찾기 시작한다.

이야는 간호사로 일하며 참전 중에 다친 군인들을 치료하는 일을 도왔다. 전부 남자들만 입원해 있던 병원에는 전쟁의 무자비함을 온몸으로 받아낸 듯, 그들의 신체가 많이 망가져 있었고 누군가는 아예 회복할 수조차 없는 지경이었다. 스테판은 목 아래로는 감각이 전혀 없는지 의사가 바늘로 신체 곳곳을 찌르는데도 전혀 못 느끼고 다른 환자와 우스갯소리를 하며 즐겁게 떠들었다. 몸이 다친 그런 군인들을 위해 병원 직원을 비롯한 모두가 신경을 쓰며 하루빨리 회복되게끔 애를 썼다.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받는 남자 군인들과는 달리 참전했던 두 여자 이야와 마샤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상처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물론 그녀들도 외적인 후유증을 가지고 있긴 했다. 이야는 뇌진탕 증후군으로 가끔씩 전원이 꺼지듯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랫배에 상처를 입은 마샤는 아기를 가질 수 없었다.
그녀들을 힘들게 하는 건 그런 외적인 상처보다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레닌그라드로 돌아온 이후 군복을 입고 외출을 했던 마샤를 보는 남자들의 시선은 같은 군복을 입은 남자를 대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참전 군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세계 어느 곳이나,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같을 게 당연하지만, 그게 여자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특히나 여성의 지위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그 시기엔 전쟁을 겪은 그녀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기 때문에 참전은 자랑스러운 것임에도 숨겨야 하는 일이었다.

똑같이 전쟁을 경험했고 보이진 않아도 상처 입은 건 같았던 두 여자는 남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전후 회복 중인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각자가 가진 상처를 서로만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 및 개인적인 생각을 포함하고 있음

이야의 아들인 줄 알았던 아이가 그녀의 병으로 인해 사망한 후, 실은 마샤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이 영화 초반에 밝혀지면서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대등한 것으로 이어질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남편의 복수를 위해 전쟁터에 남았던 엄마 마샤는 유일한 혈육인 아들을 레닌그라드로 돌아가는 이야에게 딸려 보냈을 만큼 소중하게 생각하며 아이를 위해 아득바득 살아남았을 텐데, 돌아온 곳에서 아들마저 세상에 없다고 하니 하늘이 무너질 듯했을 것이다.
이야는 이런 마샤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너무 큰 죄책감을 짊어진 이야는 마샤가 원하는 모든 것에 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처음에 마샤가 원했던 것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길에서 자신들을 부르는 남자들과 시간을 보내고, 욕구 충족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것 정도의 일을 이야는 꺼려 하긴 했지만, 마샤의 뜻에 따랐다.

그러나 더 이상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마샤 대신 임신해 아기를 낳아주는 일만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그건 상식의 선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이야의 잘못으로 아이가 세상을 떠났어도 그 일만은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신체가 전부 마비되어 감각이 없는 스테판이 죽고 싶다는 요구에 의사가 이야에게 일을 시킨 걸 마샤가 목격한다. 안 그래도 동등하지 않았던 두 여자의 관계는 한쪽에게 완전히 예속된 것으로 변해버렸고, 더불어 남자인 의사까지 사건에 개입된 걸 알았으니 마샤로서는 원하는 목적인 아기에 한층 가까워진 셈이었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아기를 원하는 마샤를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샤를 계속 보다 보니 전쟁이 그녀를 뒤틀리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고대하며 레닌그라드로 돌아왔는데 자신의 아기가 이제는 세상에 없다는 게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싶었다. 거기다 이제는 아기도 가질 수 없었으니 삶에 대한 희망이 아예 사라졌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친구인 이야에게 대신 아기를 낳아달라고 한 것일 터였다. 전쟁으로 숱한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꼈던 마샤는 살고 싶었기 때문에 생명력 넘치는 아기가 꼭 필요했다.
마샤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의 감정은 잘 모르겠다. 자신 때문에 마샤의 아이가 죽었다는 죄책감을 가질 수는 있었지만, 원하지도 않는데 남자와 관계를 맺고 대신 아기를 낳아주려고 하는 행동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이야도 삶을 붙잡을 무언가가 필요했는지도 몰랐다. 마샤에게 아기가 필요했듯, 이야에게 남은 건 친구뿐이라 마샤를 통해 삶에 대한 희망을 보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비슷한 경험을 한 두 여자만이 서로를 삶으로 이끌어 줄 수 있었다. 같은 전쟁을 경험한 남자는 그녀들만의 연대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같은 여성이라고 해도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여자는 마샤와 이야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마샤가 사귀던 사샤의 어머니가 그걸 정확하게 보여줬다. 중반쯤에 병원을 찾은 사샤의 어머니가 다친 남자 군인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영웅이라고 칭송했던 말과는 다르게 참전했다는 여자 마샤를 아니꼽게 보고 비꼬기만 했다. 같은 성별의 사람에게도 그녀들이 한 일에 대한 일말의 감사조차 받지 못하고 싸늘한 시선만을 받아야 한다는 게 얼마나 서러운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랬기에 두 사람만의 연대가 끈끈해질 수밖에 없었고, 다른 그 누구도 그녀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2015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목소리 소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영화라고 한다. 참전했던 여성들의 인터뷰를 담은 형식의 책은 실제 경험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읽는 내내 끔찍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마음에 남은 감정과는 다르게 읽은 그 해 베스트 독서 목록에 뽑았을 만큼 인상적인 책이었다.
몇 년 전에 읽은 책이라 기억이 나지 않을 법도 했지만 실제 경험을 말하고 있어서인지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었고, 읽었던 몇몇 부분이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참전했다는 사실을 남편, 자식들이 모르게 숨긴 사람, 임신한 몸으로 전쟁터에 있었고 아기를 낳은 사람, 같은 여자조차 참전한 여자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는 경험 등등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감정이 담긴 표정을 통해 당시에 그 모든 일을 실제로 경험한 여성들이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았을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시대적 배경도 그렇고 주요 소재 또한 무겁기만 한 영화라 보는 내내 우울하게 가라앉게 만들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후유증이 오래도록 남아 이야와 마샤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들의 삶에는 희망이 없어 보여서 한없이 우울하고 또 우울했다. 전쟁 후의 삶에 대해 너무나 잘 표현해서 전쟁은 일어나선 안 된다는 걸 절실히 느끼기도 했다.

아마 두 번째로 본 러시아 영화인 것 같은데, 귀에 익지 않은 언어가 처음엔 낯설었지만 믿을 수 없는 전개에 금세 몰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려운 감정을 섬세하게 연기한 두 배우들이 있었기에 인상적으로 본 영화였다.

영화 빈폴(BEANPOL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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