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2005)

1963년, 갓 스무 살이 된 잭과 에니스는 여름 동안 브로크백 산에서 양 떼를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된다. 낮에 양들을 방목하고 밤에는 야생동물의 습격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산에서 텐트를 치고 지내며 일주일에 한 번씩 산 아래로 내려가 식료품을 받아와 끼니를 챙기는 그들의 생활은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어쩔 땐 늑대나 곰을 마주치기도 했지만 대체로 날씨의 변화 외에는 무료한 생활이었다.
산에서의 외로운 생활에 서로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은 어릴 적이나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상대방을 깊이 알게 되고, 어느새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만 그 감정이 브로크백에서의 외로움에 기인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브로크백에서의 일이 끝나고 그들은 별다른 말없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에니스는 약혼했던 알마와 결혼을 하고, 잭은 로데오 경기에 나갔다가 우연히 만난 루린과 결혼을 해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4년 뒤, 잭이 에니스에게 엽서를 보내면서 두 사람은 재회한다.

양 떼 방목장 일을 구하기 위해 담당자가 오길 기다리는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에니스와 잭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딱 봐도 숫기가 없어 보이는 에니스와 거울 너머로 에니스를 지켜보며 어떤 사람일지 파악해보려던 잭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 함께 일을 하는 동안에 드러난 그들의 성격과 가족 관계 등의 이야기를 통해 살아온 환경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정 기간 함께 살며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다름은 서로 부딪치거나 아니면 의외로 잘 맞을 수도 있는 두 가지 경우를 예상하게 했는데, 다행히 에니스가 잭에게 맞춰주고 양보하는 면을 보여서 둘이 함께 생활하는 데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서로를 향해 낯선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에니스는 당황스러워하고 잭은 그를 이끄는 모습에서도 각자의 성격이 드러났다. 보수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던 에니스가 뜻밖에 과감한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건 고립된 공간에 둘뿐이라는 사실과 이 일이 끝나면 다시 만나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일 터였다.

하지만 헤어짐이 다가왔을 때 서로를 향한 감정이 생각보다 깊다는 것을 깨달았고, 시간이 흐르고 각자 가정을 꾸린 뒤에도 그 마음은 여전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오히려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애틋한 감정이 더해졌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두 사람이 마음 가는 대로 할 수는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사랑만 좇을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고, 두 남자의 사랑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수밖에 없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다행히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잭 덕분에 두 사람은 재회했고, 에니스 역시 오랫동안 그를 그리워했기 때문에 예전보다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오랜만에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고 주기적으로 만나기로 약속하면서 그동안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었지만, 잭은 브로크백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처럼 에니스와 함께 있고 싶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다른 성격이 도드라지게 나타나 서로를 조금씩 지치고 힘들게 하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먼저 연락을 했을 만큼 적극적인 잭은 에니스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이혼을 할 마음이 있었다. 주변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성격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에니스는 잭과는 완전히 달랐다. 알마와 이혼을 한 후에도 그는 잭과 일상을 공유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 어렸을 때 들은 두 남자의 소문과 직접 본 그들의 결말이 어떠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에니스는 도저히 선을 넘을 수 없었다. 잭과 에니스의 관계를 직접 본 알마가 말을 하는데도 부정하고 도망칠 정도로 에니스는 어릴 적 기억에 얽매여 그 무엇도 하지 못했다.
잭을 향한 마음이 깊어도 다른 여자를 만나며 감정을 억누르기만 했던 에니스가 가여웠고, 오로지 에니스에 대한 사랑으로 기다림의 시간만 보내던 잭 역시 안타까웠다. 서로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는 함께 할 수 없었던 시대와 발목을 잡는 끔찍한 기억이 두 사람을 힘들게 만들었다.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답답한 현실에 화가 나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고 소리를 친 후에도 만날 약속을 잡는 두 사람은 변함없었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오래도록 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을 거라 예상한 관계는 잭의 죽음으로 갑작스레 끝이 났다.
그때가 되어서야 에니스는 그동안 자신이 놓치고 있었던 게 사랑뿐만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는 알마와 이혼 후에 양육비를 대고, 먹고 사느라 바빠 딸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고 있었다. 딸과 주기적인 만남을 가지긴 하지만 그저 형식적인 자리일 뿐이었다. 데이트 중이던 여자를 데리고 나올 때도 있었으니 얼마나 무심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딸이 아빠와 살고 싶다고 말하는데도 지금이 아이에게 최선의 환경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잭의 죽음 이후 딸과 시간을 보내는 에니스의 짧은 모습에서 이전과는 다르게 살 거라는 다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일에 치이고, 사람들의 시선에 치여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는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할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건 잭이 남몰래 간직한 셔츠 덕분에 변할 수 있던 모습이었다. 겹쳐진 셔츠 두 장은 에니스를 향한 잭의 사랑 그 자체였다. 20년 전 그때부터 에니스의 셔츠를 자신의 셔츠로 소중히 감싸뒀던 잭의 마음을 에니스는 뒤늦게 품으려는 듯 자신의 셔츠로 잭의 셔츠를 감싸 소중히 걸어두고 그를 추억했다.
마음과는 다른 방향으로 향한 선택 때문에 이제는 함께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사랑만큼은 영원할 터였다.

영화가 처음 개봉했을 당시에 극장에서 보고 별생각이 들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워낙 때려 부수는 장르를 좋아할 때라 잔잔한 영화들을 보고 감동을 받거나 하지 않았을 테니 당연했다.
그래서 그때 이후로 처음으로 다시 감상을 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두 사람의 사랑이 애절하게 느껴졌고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셔츠 장면부터 결말까지는 너무 슬퍼서 눈물을 흘리면서 봤다. 어떻게 됐다는 것만 기억나고 셔츠 장면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던 걸 보면 당시에 영화에 집중을 안 했나 보다. 결정적인 장면인데 왜 기억을 못 하는지 나 자신이 좀 의아하다. 20대 때 본 영화들을 다시 봐야 하나 싶다.

안 감독은 액션 장르 말고 이런 감성적인 영화를 연출해야 되는 것 같다. 작년에 개봉한 모 영화를 떠올리면 더더욱 그런 확신이 든다.
영화가 좋았던 건 감독의 연출도 있지만, 배우들의 절제된 감정 연기도 한몫했다. 눈빛으로 감정을 말하는 두 배우의 애틋한 사랑이 너무 절절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히스 레저가 등장해서 그런지 왠지 더 슬픈 느낌이 든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물론 함께 지낼 수조차 없었던 두 사람의 애틋한 마음을 첫 감상과는 다르게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2005)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