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Minari, 2020)

 

 

한국인 이민자 가족인 제이콥과 모니카, 그리고 두 아이 앤, 데이빗은 캘리포니아에서 살다가 이제 막 아칸소로 이사를 왔다.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사를 온 게 아닌, 제이콥이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고자 낯선 땅에 온 것이었다. 모니카는 그 어떤 말도 듣지 못했는지 가족이 살 집이라고 트레일러를 보여주는 제이콥의 말에 답답함부터 느낀다. 제이콥은 잘 살 수 있을 거라며, 농장을 만들어 자신들과 같은 한국 이민자들을 위한 채소, 과일을 심어 팔 거라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그녀는 못마땅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드넓은 땅 한가운데에서 가족들은 생활을 시작했다.

모니카는 병아리 감별소에 나가 일을 하기 시작했고, 제이콥은 농장을 새로 가꾸기 시작하며 틈이 날 때 아내를 따라가서 일을 했다. 모니카는 아무도 없는 곳에 둘만 남아있을 아이들이 걱정됐는데, 다행히 한국에 사는 엄마가 와서 함께 살면서 부부가 일을 나갔을 때 아이들을 봐주기로 했다. 모니카는 오랜만에 만난 엄마를 반가워하며, 또 미국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을 바리바리 싸온 마음에 감사해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한국에서 온 할머니와의 생활이 영 낯설기만 하다.

 

 

보통은 여건이 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이사를 하곤 하지만, 제이콥의 가족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아칸소로 온 게 아니었다. 제이콥과 모니카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건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 그들은 좁은 집에 살긴 했어도 경제적인 면에서는 지금보다 나았다는 것이다. 비록 병아리 감별을 하며 돈을 번 것이었어도 말이다.
그런데 제이콥은 그렇게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내기보다는 무언가를 제 손으로 만들고 일궈내고 싶었다. 그래서 홀로 모든 것을 계획해 이사를 단행한 것이었을 테고, 아내에겐 그저 믿고 따라오라는 말만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자신감 넘치던 제이콥과는 달리 모니카는 막막하기만 했다. 트레일러에서 사는 게 어떤 건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집 터를 잡은 곳은 너무나 외진 곳에 있다는 게 문제였다. 아들 데이빗의 심장이 좋지 않아서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를 대비해 병원이 가까운 도시에 살기를 바랐다.
자연재해 같은 일이 문득 일어날 때마다 부부는 서로 대립을 하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지만, 앤과 데이빗은 이곳에서 사는 걸 그리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데이빗의 심장이 안 좋아서 뛰진 못해도 들판과 나무, 그리고 근처의 개울 같은 곳이 있어서 놀기에는 괜찮았다.

네 가족의 생활이 어떻게든 시작되었는데, 부부 모두 일을 해야만 하는 입장에서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는 베이비시터가 있어야만 했으나 여의치 않아서 할머니 순자가 미국으로 와 함께 살게 됐다. 순자의 딸 모니카는 오랜만에 만난 엄마가 반갑고 또 고마워서 눈물부터 났다. 엄마란 자식을 낳았을 때 더욱 애틋해지고 고맙고 미안해지는 존재인 것 같다. 또한 엄마는 자식이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마냥 어린아이처럼 여기는 듯하다. 그래서 조금 울컥해졌었다.
한국에 가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할머니의 존재 자체를 낯설어 했다. 보통의 미국 할머니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한국 할머니였기에 어색했고 때론 이상하게만 보였다. 아이들, 특히 데이빗과 순자가 함께 하는 장면에서는 여지없이 웃음이 터졌다. 순자가 아이들과 화투를 치며 감탄사처럼 욕설을 했던 장면, 데이빗이 한약 때문에 할머니에게 몹쓸 장난을 친 장면 등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이 자신을 탐탁지 않아 하는 걸 다 알면서도 순자는 모르는 척 아이들을 챙기며 살가운 모습을 보였다. 제 딸의 아이들이라 예쁘지 않을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순자가 함께 살게 되면서 가족의 생활이 안정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의기양양하던 제이콥은 앞길이 막막해졌고, 농사에 관련된 문제가 집에까지 이어져 모니카와 대립하는 바람에 두 사람의 관계는 터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가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던 순자에게도 큰일이 생겼고, 영화 후반엔 가족 모두 망연자실할 사건도 일어났다.

기회의 땅, 아메리칸드림이라고 말할 정도로 미국은 세계 곳곳의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위해 찾는 나라다. 이민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뿌리내린 삶의 터전을 버리고 미국으로 왔을 땐 희망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고국에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어서, 앞길이 막막하기만 해서 다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꿈을 품고 왔다. 하지만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낯선 나라에서의 삶은 고국에서의 삶보다 더 치열했고 힘겨웠을 게 당연했다. 기회의 땅은 자국민들이 우선이었을 테고, 그러다 보면 이민자들이 설 수 있는 자리는 한정적이었을 텐데 그 자리를 놓고 다른 이민자들과 하는 경쟁은 더 고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소중한 존재가 그들의 뒤에 있기에 어떻게든 버티고 이겨서 하나의 자리라도 차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제이콥이 농장을 만들겠다고 무모하게 도전한 것 역시 가족 때문이었다. 혼자 살았다면 무슨 일을 하든, 먹고 잘 곳 따위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마음과는 관계없이 사람 일이 뜻대로 되는 게 아니었기에 더 내려갈 곳이 없을 것만 같은 이곳에서 자꾸만 희망보다는 절망을 맛보게 됐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내와도 의견이 맞지 않아 사이가 틀어져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해야 했던 상황이 오기도 했다. 나아지는 것처럼 보여도 심적으로는 버틸 수가 없었던 모니카가 이해가 됐다.
그렇게 가족이 흩어지는가 싶었지만 역시 가족은 가족이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가족은 자신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식의 손을 덜어주기 위해 애를 쓴 순자, 아내와 아이들에게 나오지 말라고 소리를 쳤던 제이콥, 남편을 돕기 위해 뛰쳐나갔던 모니카는 물론이고 동생에게 차에 있으라고 당부하던 앤과 별로 안 좋아했던 할머니에게 우리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던 데이빗 모두 가족이었기에 서로를 먼저 챙기고 보듬어줬다. 결말의 장면이 그래서 뭉클하게 마음을 울렸다.

앞으로 제이콥의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습기가 가득한 외진 곳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미나리처럼 미국이든 어디든 뿌리를 내리고 굳세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느껴졌다. 가족이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제36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을 때 관심이 생겼었고, 작년 10월에 메인 예고편을 보고 난 뒤에는 기대감이 절로 생겼다. 이후엔 윤여정 배우님의 수많은 여우조연상 쾌거에 얼른 영화가 보고 싶었는데 개봉 날짜가 잡히지 않아 애가 탔었다. 그래서 개봉하자마자 극장에 가서 보고 왔다.

미국에 정착한 한국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미국적이면서도 한국적으로 풀어냈다. 80년대를 배경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를 잘 담아냈다. 공감이 되지 않을 상황에 있는 한 가족의 이야기였지만 서로 오가는 감정엔 너무나 공감이 됐다. 감성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내게 너무나 좋았던 작품이었다.
데이빗과 순자가 함께 등장할 때마다 코믹한 부분이 있어서 여러 번 웃기도 했다. 그리고 후반엔 여지없이 눈물이 터져서 영화 끝날 때까지 우느라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벅차올랐다. 담백한 결말까지 정말 좋았다.

영화를 이끌어갔다고 할 수 있는 스티븐 연 배우의 한국어 실력이 많이 늘어서 자연스러웠다. 감정 연기 또한 좋았다. 한예리 배우는 워낙 매력적이라 호감이었는데 이 영화 덕분에 못 본 작품들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앨런 김과 노엘 케이트 조는 진짜 자식들처럼 연기를 잘 해줘서 인상적이었는데, 어른스러운 앤과 장난기 많은 막내 데이빗의 캐릭터가 달랐기에 더 좋았다. 그리고 윤여정 배우님은 처음엔 보통의 할머니와 다를 바 없고 연기 또한 언제나 보여주던 모습이라 왜 그렇게 상을 많이 받으신 건가 좀 의아했다. 그러다 중반 이후 상황이 바뀌면서 많은 상을 받으신 이유를 납득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연기력은 통하는 법이다.

내용과 메시지는 물론이고, 음악과 영상까지도 정말 좋아서 아름다운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 미나리(Minari,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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