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리스(Maurice, 1987)

1909년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
모리스는 학교생활이 왠지 지루해 보였고 함께 수업을 받는 학생들과는 의견이 맞지 않는 듯했다. 그중 리슬리와는 티가 날 정도로 의견 충돌이 있었다. 그런 리슬리의 초대를 받아 기숙사로 향한 모리스는 그곳에서 클라이브를 만난다. 왠지 모르게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클라이브가 재미있었던 모리스는 그와 어울리며 가까운 사이가 된다.
클라이브가 모리스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대화를 통해 풀어가며 적잖은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들의 우정이 깊어질수록 두 사람은 서로에게 친구 이상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낯설고 두려운 감정을 조심스럽게 확인한 두 사람의 마음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조금씩 가까워졌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 더는 나아갈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만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어머니와 여동생으로 이루어진 가족이라 선생이 아버지의 마음으로 모리스에게 성교육을 시켜준 것이 어쩌면 그에게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그런 노골적인 묘사를 듣는 어린 모리스의 표정을 보니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게 분명했다. 두려운 것 같기도 했다. 아마 이때부터 모리스는 다른 사람의 말에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대학에 들어간 후에 리슬리와 의견 충돌이 있었어도 그가 기숙사로 초대하자 선뜻 방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클라이브와 친구가 된 이후에는 그의 말에 영향을 받으며 잘 다니던 교회를 예배 도중에 나오고, 급기야는 어머니가 나무라는데도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처음에 클라이브는 소극적인 모리스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모리스에게 사랑을 느끼고 고백을 했지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그에게 바로 거절을 당했다. 그래서 당연히 상처를 입었으나 모리스 역시 같은 마음이라는 걸 금세 확인하고 우정 이상의 관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리슬리가 남색을 드러냈다는 죄로 재판을 받고 사회적 명성까지 잃어버리자, 클라이브는 크나큰 충격을 받아 앓아눕게 된다. 아무래도 클라이브가 가진 게 많고 법과 정치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모리스를 향한 마음을 접고선 여느 사람들처럼 여자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다.

처음부터 조금은 다른 성격을 보였던 두 사람이었는데 헤어지는 과정에서도 그들이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클라이브는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더 많은 불행을 안고 올 삶보다 무난하고 평범한, 남들과 같은 행복을 택했고, 모리스는 클라이브가 없는 삶은 사는 게 아니라는 듯 온통 사랑에 매달리는 감성적인 모습을 보였다.

사랑이나 이별 앞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에 이후의 삶 역시 다르게 흘러가기 마련이었다. 이별을 거부했지만 결국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모리스는 당시 보수적인 시대의 영향을 받아 동성을 사랑하는 게 병이라고 인지해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고 또 찾았다. 하지만 그건 병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어디에서도 모리스를 치료할 수 없었다. 그저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 모리스 앞에 나타난 하인 알렉 덕분에 모리스는 클라이브와 끝내 넘지 못했던 선을 넘었고, 내내 사람과 시대의 영향을 받던 그가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하는 모습을 통해 진실한 사랑과 행복을 손에 넣었다.
클라이브는 짐짓 냉정하게 보이며 사회적인 성공을 이루었지만, 마지막 모리스의 고백에 그의 진짜 속내를 알 수 있었다. 본인이 먼저 이별을 이야기했고 이후엔 우정이라는 선을 지켰지만 클라이브의 마음속엔 여전히 모리스의 자리가 남아있었다.

보수적인 시대였기 때문에 클라이브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신병이 아닌데도 그런 취급을 받으며 사회적으로 매장이 되는 시대라 어쩔 수 없었다. 사랑 하나만 놓아버리면 모든 걸 이룰 수 있었기에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사랑에 푹 빠졌던 모리스의 선택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클라이브와의 사랑을 통해 버림받아 슬퍼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지만, 결국 각오를 하고 용기를 낸 덕분에 그토록 원하던 사랑을 이루게 됐다.

1987년에 제작되어 2019년에 첫 개봉을 한 영화였다. E. M. 포스터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작가가 자신이 죽기 전까지는 절대 출판하지 말라던 소설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고, 또 영국이 워낙 보수적인 나라라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작가가 1970년에 사망했다고 그래서 조금 놀랐다.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영국은 동성애에 관해 색안경을 끼고 본 것 같아서 말이다.

너무 좋았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각종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한 제임스 아이보리가 연출했다. 그래서인지 비슷한 풀밭 장면이 등장했던 것 같다. 장소, 각도, 배우들의 포즈까지 비슷해서 괜히 더 기억에 남는다. 배경음악과 영상도 내용에 잘 어울려서 좋았다.
제목이 <모리스>라서 당연히 제임스 윌비의 분량이 월등히 많지만, 내게는 더 친숙한 휴 그랜트가 인상적이었다. 휴 그랜트의 젊은 시절 모습이 내게 익숙한 90년대 영국 로맨틱 코미디에서의 모습과는 달라서 놀라웠다. 그저 눈이 처진 아저씨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정말 젊고 아름다워서 깜짝 놀랐다. 괜히 모리스가 클라이브에게 빠진 게 아니구나 싶다.

나중에 원작을 읽어봐야겠다.

 

영화 모리스(Maurice,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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