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트하우스(The Lighthouse, 2019)

 

19세기 후반 어느 해 겨울, 두 남자가 4주간 등대지기 일을 하기 위해 고립된 섬을 찾았다. 섬에 도착해 짐 정리를 시작한 두 사람은 왠지 서로 잘 맞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젊은 남자 에프라임 윈슬로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일을 오래 한 듯 보이는 나이 든 등대지기인 토머스 웨이크는 매 끼니마다 술을 들이켜며 에프라임에게도 마시라고 권했다. 그리고 토머스는 교대로 근무해야 하는 일마저 자기 혼자 하겠다고 강하게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일은 에프라임에게 너무나 고되고 힘들기만 했다. 업무량은 상당했고 자신 외에 단 한 사람뿐인 토머스를 견디기 힘들었다. 거기다 갈매기까지 귀찮게 하는 바람에 에프라임은 분노가 쌓여만 간다.

 

 

노련한 등대지기와 신입 등대지기의 4주간의 동거는 처음엔 그리 특별할 게 없었다. 규정을 지키려고 하는 에프라임과 그런 것 따위 깡그리 무시하는 토머스 사이에 언쟁이 있긴 했지만, 융통성 정도는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 크게 문제로 삼을만한 건 아니었다.

그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한 달가량 두 사람만 살아야 하는데도 통성명조차 하지 않았다. 왠지 그 부분에서 두 사람이 서로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업무나 두 사람 사이의 관계보다는 다른 것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섬에 어떤 저주라도 걸렸는지 도착한 날 밤부터 두 사람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는 듯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에프라임은 섬의 숙소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가 숨겨둔 세이렌 조각을 이불 밑에서 찾아냈다. 그 물건을 품에 간직한 그는 그날 밤 꿈에서 세이렌을 목격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실제인지 아닌지 정확히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세이렌에게 참았던 욕정을 해소한다.

에프라임 이전에 함께 일하던 등대지기가 미쳐서 죽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토머스는 한밤중에 등대에서 기이한 행동을 보였다. 토머스가 소지한 열쇠로 열고 들어가야만 하는 등대 꼭대기에서 살아 숨 쉬는 듯한 빛을 보며 환각에 빠져들었다.

 

현실과 환상을 구분할 수 없는 고립된 장소에 있던 두 사람은 교대를 하러 오기로 한 배가 폭풍으로 도착하지 못하자 그동안 억눌러왔던 분노를 서로를 향해 쏟아내기 시작한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 및 개인적인 생각을 포함하고 있음

 

영화 초반에 밝혀진 에프라임의 선임자의 죽음이 왠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 후반에는 에프라임의 정체에 대한 비밀에 다른 죽음이 있었다는 게 앞선 죽음과 연결되는 것 같았다. 하나의 죽음이 에프라임을 존재하게 했고, 다른 죽음이 토머스와 에프라임 두 사람을 만나게 했다. 죽음에서 비롯된 새로운 출발은 비극이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영화 곳곳에 그리스신화를 떠오르게 하는 설정이 등장했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에게 화가 난 제우스가 판도라를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와 결혼하게 했고, 결국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 인류에게 재앙이 찾아왔다는 신화가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 등대 꼭대기에서 토머스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처럼 보이던 장면을 통해 그가 에프라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그건 판도라의 상자에서 튀어나온 건 7가지 죄악이었다. 에프라임의 존재 자체가 부정이었고, 손에 피를 묻혔으며, 색욕과 식탐 등의 죄악 또한 그에게 나타났다.

이렇게 보면 에프라임이 판도라로 인해 불행을 겪는 인간처럼 보였지만, 마지막에 갈매기에게 내장을 쪼아먹히는 모습을 통해 그가 평범한 인간이 아닌 프로메테우스에 비유되는 존재로 보이기도 했다. 그럼 선임자가 에피메테우스이고 토머스가 판도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다고 하기엔 토머스는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 같기도 했고 불행이라는 씨앗을 퍼트린 판도라 같기도 했다. 이 부분은 되게 혼재되어 있고 애매하기도 해서 잘 모르겠다.

 

그리스신화 쪽으로 해석하는 것보다는 불빛을 통해 잠재의식이나 본능이 표출되었다는 게 좀 더 확실해 보였다. 등대지기로 일하는 이 공간을 지키려는 토머스와 이곳을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려고 하는 에프라임이 부딪치면서 숨겨왔거나 억눌러왔던 진짜 자아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그 광기가 왠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에프라임과 토머스 두 사람이 동료의 죽음을 통해 만나게 됐다는 점이나 그 죽음에 비밀이 있었다는 점에서 혹여 동일 인물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최근 이웃분들 리뷰에 자주 올라온 영화라 궁금해서 보게 됐다. 정사각형 비율의 화면이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굉장히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섬에 고립된 두 남자의 상황과 비슷하게 협소한 공간 안에 갇힌 것 같은 간접적 경험을 했다. 영화 내내 색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흑백 화면은 왠지 차갑게 느껴졌다. 거기다 불쾌함을 주는 이미지가 종종 등장해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영화를 이끌어간 윌렘 대포와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 대결이 대단했다. 윌렘 대포는 워낙 연기를 잘 하는 배우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별로 관심이 없어서 출연하는 영화를 많이 못 본 로버트 패틴슨이 점점 미쳐가는 연기를 정말 잘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모호하고 복잡한, 정확히 판단 내리기 어려운 영화인 것 같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라 생각하면 할수록 더 복잡한 무언가가 남아 머릿속을 휘젓는다. 아무래도 한동안 이런 스타일의 영화는 또 멀리하겠구나 싶다. 기이하고 불쾌한 이미지가 얼마 동안 생각날 것 같다.

영화 라이트하우스(The Lighthous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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