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크 시티(Dark City, 1998)

늦은 밤, 한 남자가 물이 가득 찬 욕조에서 깨어난다. 남자는 자신이 왜 욕조에서 잠들었는지 모르는 듯 놀란 표정이다. 거울을 보니 이마에서 피가 한 방울 흘러나와 있길래 닦고선 의자에 가지런히 개켜진 옷을 입고 욕실에서 나온다. 방 안 옷장에 있는 코트를 입고 한쪽에 놓인 여행 가방에서 옷가지와 소지품을 확인하지만, 남자는 그것들을 처음 보는 듯 행동한다.
그러는 와중에 방 안에 있는 전화벨이 울린다. 무심코 수화기를 들어 올린 남자는 의사라는 사람에게서 실험이 잘못되어 자신의 기억이 지워졌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면서 의사는 어떤 사람들이 그를 찾기 위해 가고 있으니 발각되기 전에 얼른 도망치라고 말한다.

영문도 모르고 일단 벗어나려던 남자는 방구석에 웬 여자가 피를 흘리며 죽어있는 모습을 본다. 방 밖으로 나오자마자 검은 코트를 입은 음침한 남자들을 보고 이내 도망치는데, 로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게 왠지 이상하다. 부스에서 전화 중이던 여인, 소파에 앉은 사람은 물론 카운터의 남자까지 모두 죽은 듯 자고 있다.
밖으로 나가려는 그를 카운터에 잠들어 있던 남자가 어느새 일어나 불러 세운다. 그를 머독이라고 부르며 지갑을 식당에 두고 갔다는 연락이 왔다고 말한다. 기억을 잃은 탓인지 자신을 부른 이름마저 낯설게 느껴지는 남자는 그 이후로 형사는 물론 검은 옷을 입은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쫓겨 다닌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사람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왠지 기이한 분위기를 풍기는 코트 입은 존재들과 매춘부 살인사건을 수사 중인 형사 범스테드 역시 존 머독을 쫓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고, 거기다 이상한 사람들에게 쫓기는 바람에 존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 그나마 식당에서 찾은 지갑 안에 들어있던 신분증의 주소를 확인하고 열쇠도 주머니에 있었기 때문에 집을 찾아가게 되지만, 그를 맞이하는 아내라는 엠마 역시 낯설기만 하다. 그런 와중에 기이한 존재들과 맞닥뜨린 상황에서 믿을 수 없는 일까지 일어났다. 쫓아온 그들에게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어떤 기운을 통해 물리칠 수 있는 이상한 능력까지 존에게 생겼다.

이상한 점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존이 살고 있는 도시에는 낮이 없이 밤만 지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밤 12시가 되면 사람들은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잠이 들어버렸다. 길에 있는 사람은 물론 운전을 하다가도 잠이 들어버렸는데, 존 혼자만 잠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도시의 건물들이 모양을 바꾸고 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사람들을 꾸며놓고 이마에 주사를 놓는 모습을 보게 된다. 도시가 낯선 존재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기다 그들은 사람들까지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능력도 가진 존재들이었다. 초반엔 뭐가 뭔지 알 수 없어 그 모든 것을 혼자 보고 있는 존과 같은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존은 기억을 잃고 깨어났을 때 통화를 했던 의사를 만나고, 자신처럼 잠들지 않는 남자와도 마주하면서 이 도시를 벗어날 방법을 찾게 된다. 음침하기만 한 도시와는 다르게 밝고 환하게 빛나는 쉘 비치가 기억을 잃은 존에게 잔상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도시를 벗어날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이한 그 존재들과 마주해야만 했다.

그들이 주사를 놓는 것은 기억을 주입하는 행위이고, 그 기억은 존에게 전화를 걸었던 의사에 의해 조작되고 있었다. 현재는 물론 어릴 때의 기억까지 조작하고, 심지어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형사들이 쫓게 만드는 이유는 자신들의 종족을 위한 것이었다. 그 존재들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개별성을 띠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공동의 성질을 띠는 존재라 각자 다른 기억이 있는 게 아닌, 공유된 기억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멸족에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개별적인 기억을 가진다면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인간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사람에게 기억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다. 기억이 사람에게 중요하긴 했지만 그것에만 의지해서 살아갈 수는 없었다. 기억이라는 것 자체가 과거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보다는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인 감정에 의해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과거에 기반을 둔 기억을 떠올릴 때 당시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현재에도 온갖 감정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존이 엠마에게 자신에 대한 기억이 주입됐다고 말을 했어도 그녀는 감정까지는 조작된 게 아니라고 말했듯, 존 역시 이제는 엠마가 아닌 애나가 된 그녀를 이전과 같은 감정으로 대하는 마지막 모습을 보여줬기에 기억보다는 감정이 한 사람의 영혼을 이루고 있다고 느껴졌다.

20년도 더 된 영화에 제니퍼 코넬리와 키퍼 서덜랜드를 제외하면 낯선 배우들이 출연하고 제목도 왠지 들어본 것 같지만 영화 제목으로는 생소해서 전혀 몰랐던 영화인데, 이웃 블로거님이 몇 번 언급하셔서 알게 됐다. SF 장르에, 미스터리, 스릴러까지 가미되어 궁금해져서 보게 됐다.

처음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서 좀 집중하기 어려웠는데, 조금 지나고 영화의 비밀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기억이나 감정, 인간의 영혼 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역시 90년대 SF 영화는 철학적인 문제를 담고 있는 게 특징인가 보다. 발전된 기술에 익숙해져서 어설픈 CG가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설정이나 내용은 시대를 앞서가고 있었다. 결말 대결 장면이 좀 과하게 느껴져서 좀 아쉽긴 했어도 내용은 충분히 좋았다.

 

 

영화 다크 시티(Dark Cit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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