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You Were Never Really Here, 2017)

 

청부업자로 살아가며 유명한 사람들의 껄끄러운 뒷일을 맡아서 하는 조는 상원 의원 알버트 보토의 의뢰를 받는다. 엄마가 자살을 한 뒤 가출을 빈번하게 하던 딸 니나가 일주일째 연락이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어떤 주소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알버트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신하면서 자비 없다고 소문난 조에게 딸을 찾아달라고 말했다.

 

니나를 찾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사고 준비를 하는 조는 오랫동안 시달려온 기억이 자꾸만 재생된다. 어린 시절과 전쟁터에서 겪은 일은 그의 내부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평생 안고 가야 할 이 기억들이 주는 상처는 니나를 구출한 뒤, 알 수 없는 또 다른 사건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조는 필사적으로 싸우며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 및 개인적인 생각을 포함하고 있음

 

숫자를 거꾸로 세는 여자아이와 남자의 음성으로 시작된 영화는 이내 화면이 바뀌어 비닐봉투를 뒤집어쓰고 호흡을 하려 애쓰는 조를 보여줬다. 조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내쉬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무표정한 어린 소년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조가 일을 끝내고 돌아간 집에서는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말다툼 소리에 몸을 숨긴 어린 자신과 젊은 시절의 무기력한 어머니, 망치를 손에 쥐고 수건을 뒤집어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파편처럼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다.

이유도 모른 채 쏟아지는 폭력 속에서 살기 위해, 숨을 쉬기 위해 애를 써야 했던 어린 시절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듯,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강한 군인이 된 조는 자신이 어린아이에게 건넨 초콜릿 바 하나로 살인이 일어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한다. 그것이 조를 무력감에 빠지게 만들었고 폭력과 살인으로 얼룩진 트라우마가 됐다.

그 결과, 모순적이게도 조는 폭력이나 살인을 통해 돈을 버는 청부업자가 됐다. 그것도 총으로 사람을 위협하고 죽이는 게 아닌, 어렸을 때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망치를 무기로 쓰고 있었다. 어쩌면 조는 망치를 사용하면서 아버지의 기억에서 벗어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어릴 적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오히려 상태가 더 심각해져 한 발이라도 잘못 디디면 죽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다. 트라우마는 아무리 애를 써도 떨쳐낼 수 없었다. 어른이 되었어도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으면서 잊지 못하게 수시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죽지 못해 사는 조가 맡게 된 니나 사건은 그의 다른 일들과 특별히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니나를 무사히 구출한 뒤, 돌려보내기 위해 기다리던 사이에 아이의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어이없는 뉴스가 보도되고,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접선 장소로 쳐들어와 니나를 다시 납치해가면서 상황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일을 주문받는 자신의 동업자와 늙은 어머니의 죽음은 조를 이전보다 더 깊은 무력감에 빠지게 했다. 더이상 삶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지 않은 조가 어머니의 시체를 수장시키며 자신도 뒤따르려고 할 때, 문득 니나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의 폭력으로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았던 자신과 같은 삶을 살게 할 수 없다는 마음이 그를 삶으로 다시 이끌었다.

무자비하고 냉정한 청부업자였지만 자신의 상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감정이 동요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시 니나를 구하러 가는 조가 맞닥뜨리게 된 건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늘 몸을 숨기고 이 모든 게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수동적인 어릴 때의 자신과는 달리 니나는 같은 일이 두 번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듯 자신의 몸을 지켰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자신을 약한 인간이라고 몰아세우던 조는 그런 니나에게서 괜찮다는 말을 들으면서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냈다는 생각으로 삶 역시 끝내고자 했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의지할 데가 아무도 없는 니나를 통해 다시 한번 구원을 받게 된다.

 

마지막에 조가 죽였던 건 트라우마로 가득했던 과거의 자신이었다.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조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어머니나 자기 자신이 아닌, 같은 상처를 받았을 작은 소녀였다. 비록 낯선 타인이었어도, 함께 한 시간이 짧기만 했어도 서로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기에 손을 내밀어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었다.

 

 

조의 트라우마와 그것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는 89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때문인지 그렇게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는 않았다. 대체로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를 활용해 여러 사건으로 조가 상처받은 내면을 안고 죽지 못해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줬다. 세부적인 서사를 생략한 간결한 진행으로 오롯이 조의 감정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니나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몇 년 전 어머니의 자살과 더불어 아버지의 죽음 역시 뭔가 꺼림칙한 부분이 있었기에 니나의 가정이 과연 평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은 원작이 있으니 나중에 확인해봐야겠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통해 이름이 익숙해진 린 램지 감독의 이 영화는 전작과 비슷하게 음악과 BGM을 잘 활용해서 상황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몇몇 장면은 아주 좋았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정말 인상적이었다.

감독이 원작을 각색할 때 주연 배우로 호아킨 피닉스 말고는 생각한 사람이 없었다고 하던데, 역시나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보여줬다. 작년에 개봉한 <조커>를 통해 많은 상을 수상했지만, 그 이전에 이 영화로 제70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많지 않은 대사로 표정과 눈빛만으로도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가 정말 좋았다.

그리고 니나 역할의 예카테리나 삼소노프는 매력적인 여린 소녀의 모습으로 강인한 내면을 보여줘서 인상적이었다.

 

소녀를 구하는 남자라는 설정이 여러 영화를 떠오르게 했지만, 트라우마에 포커스가 맞춰진 영화라 오락적이라곤 할 수 없었다. 피가 터지고 폭력적인 장면이 등장하긴 해도 최소한으로 보여주며 감정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데, 개인적으론 취향에 맞아 좋았던 영화였다.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You Were Never Really Her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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