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1999)

 

 

1999년.
독일 사업가는 생일을 맞이하여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작은 레스토랑 “자보”를 찾았다. 사업가는 젊었을 적에 이 레스토랑에 드나들며 많은 추억을 쌓은 듯했다. 그는 생일 축하 연주를 하는 음악가에게 듣고 싶은 곡이 있다며 신청을 하고, 곧 연주가 시작되자 어느 한 곳에 시선이 집중되어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러다 이내 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60년 전.
레스토랑의 주인이자 지배인인 자보는 연인 일로나와 함께 오픈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았지만 그들은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피아니스트 오디션을 직접 봤다. 딱히 마음에 드는 연주자는 없는 듯했지만 일단 누군가를 뽑기로 했는데, 약속했던 시간보다 늦게 한 사람이 나타난다. 일로나 덕분에 오디션을 보게 된 피아니스트 안드라스는 너무나 아름다운 곡을 연주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일할 기회를 얻는다.

 

 

일로나와 자보는 겉으로 보기엔 그리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았다. 젊고 아름다운 일로나와는 달리 자보는 나이가 좀 들어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보는 일로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그에겐 기쁨이 되는 듯했고, 그 어디에 있어도 눈은 일로나를 좇았다. 일로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웃음 짓는 자보의 진심 어린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오디션을 보기 위해 레스토랑을 찾아온 안드라스로 인해 자보의 행복은 반으로 줄어들었다. 안드라스는 일로나를 보자마자 한눈에 반했고, 자신이 작곡한 “글루미 선데이”라는 아름다운 곡을 그녀에게 바치는 로맨틱함을 보였다. 그에 대한 일로나의 반응 역시 싫은 건 아닌 듯했다. 오히려 안드라스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일로나가 자보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편안한 사랑을 주는 자보와 자신의 예술적 감각을 일깨우는 안드라스는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두 사람 모두 사랑했다.
연인이 버젓이 있는데 안드라스에게 빠져드는 일로나의 감정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일로나의 양다리(?)를 받아들이고 합의하에 관계를 이어가는 세 사람의 행동 또한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일로나의 아름다운 외모를 보고 있으면 머리로는 그렇지 않아도 마음은 받아들이게 됐다.

이 과정에서 자보는 사람은 두 가지를 모두 좋아할 수 있다면서, 일로나를 완전히 잃느니 한 부분이라도 가지겠다는 명대사를 남겼다. 외모만 보고 판단했던 나의 편협함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 자보처럼 행동할 수 있었다. 물론 안드라스 역시 자보와 형제처럼 지내며 사랑하는 일로나의 곁에 머물렀다. 겉으로 보기엔 조금은 이상했던 세 사람의 관계였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진심이었기에 괜찮았다.

그리고 “글루미 선데이”라는 곡이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 자보 덕분에 음반을 내서 안드라스와 레스토랑이 유명해지게 된다. 그들 앞에 행복만 있을 것 같았지만, “글루미 선데이”가 자살을 부르는 곡으로 유명해지는 바람에 안드라스는 자괴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그의 곁을 지키는 일로나와 자보가 있었기에 안드라스는 견뎌낼 수 있었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그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자살을 부르는 곡으로 우울함에 빠져들었던 헝가리를 더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게 만들었다. 그리고 서로 균형을 잘 유지하며 마치 가족 같은 연인 관계를 이어가던 세 사람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줬다. 레스토랑 오픈 초기에 자주 찾아와 일로나에게 청혼까지 했던 한스가 독일군 대령이 되어 돌아와 불안하게 만들었고, 레스토랑의 주인 자보가 유대인이라는 문제도 있었다.
사람이라는 게 권력을 손에 쥐면 얼마나 달라지는지 한스를 통해 잘 보여준 것 같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소심한 성격을 보이며 일로나에게 거절당한 슬픔으로 강에까지 뛰어들었던 한스였는데, 하켄크로이츠 완장을 차고 나타난 그는 그렇게 당당하고 거만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자보에게도 거만하게 굴며 권력을 행사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가증스러웠는지 모른다.

안드라스는 이전에 한 번 마주친 한스를 그리 좋게 보지 않았었는데, 시간이 흘러 뒤바뀐 위험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너무나 꼿꼿해서 한 번 건드리면 휘는 게 아니라 완전히 부러지고 만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거기엔 일로나가 남들 앞에선 절대 보이지 않는다던 행동을 했다는 이유도 있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바친 곡을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노래로 들으며, 그녀를 위해 마지막으로 연주하고 목숨을 끊는 것이 그에겐 더없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내 한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했던 유대인 자보는 자신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한 것처럼 말했지만, 실은 일로나를 위한 결정이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한스가 자신을 아니꼽게 보는 걸 알고 있음에도 다른 유대인들을 위한 선량한 행동까지 했다. 그러고선 정작 본인은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가는 안타까운 끝을 맞이한다.

사랑하는 두 남자를 잃은 일로나의 감정이 어땠을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굴욕적이지만 한스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는데 정작 이 인간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뱀 같은 놈이었다. 일로나가 복수의 칼날을 가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그 복수는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완성되었다. 그 시간 동안 일로나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까 싶다. 전쟁을 겪고 나이가 아주 많이 들었어도 그녀가 차마 죽을 수 없었던 이유였던 건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일로나와 그녀의 아들이 등장하는 걸 보며 그가 누구의 자식인지 궁금했다. 일로나는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영화에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가 한스의 아들이라면 복수가 더 통쾌했을 것 같은데, 그러면 일로나에게 너무나 가혹할 것 같아서 깊이 사랑한 두 사람의 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글루미 선데이”는 영화보다 노래 제목으로 익숙했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꽤 오래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이번에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갑자기 영화가 눈에 들어와서 보기 시작했다.

영화 초반에 세 사람의 관계를 빠르게 정리해놓은 걸 보며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실 지금도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어떻게 셋이서 사랑을 할 수 있나, 질투도 안 나는 건가 하는 생각만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영화라서 그렇지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난리가 났을 것 같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일로나 역할의 에리카 마로잔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보는 걸 좋아하는 내 눈에 에리카 마로잔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순수하면서도 섹시하고 고혹적이고 우아했다. 세 남자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일로나 외에 인상적이었던 건 자보 캐릭터였다. 이렇게 멋진 남자를 처음에 외형만 보고 판단했던 나를 자책했다. 정말이지 진국인 남자라 마지막이 너무 슬펐다.

셰레시 레죄라는 헝가리 음악가가 1933년에 “글루미 선데이”의 원곡을 발표했다고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자살을 불러일으켜 헝가리 정부에서 노래를 금지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단다. 그리고 놀라운 점은 원곡자 셰레시 레죄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저주받았다는 소문이 무성했던 곡에 시대적 배경이 더해져 너무나 서글프지만 아름다웠던 영화였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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