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래비티(Gravity, 2013)

우주에서 허블 망원경 수리를 하던 라이언 스톤 박사와 맷, 샤리프는 갑작스레 위기에 처한다. 러시아 위성이 파괴되어 잔해가 그들이 있는 공간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던 것이었다. 하던 일을 멈출 새도 없이 잔해가 그들에게 와서 부딪쳤고, 그 영향으로 세 사람은 제각각 따로 떨어져 나간다. 특히 라이언은 멀리 튕겨져 나간 것도 모자라 산소까지 부족한 상태에 빠진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갈 수도 없고 휴스턴과 통신조차 되지 않는다.

다행히 맷이 그녀를 찾아내 우주선으로 돌아가는데, 그 역시 파괴되어 우주비행사들도 사망했다. 어쩔 수 없이 가까운 곳에 있는 다른 우주선으로 향하지만 두 사람 모두 생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 여유롭게 우주를 유영하는 맷과는 달리 라이언은 생체 신호에 변화가 있을 정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망원경을 고치기 위해 특별히 나사에 고용되어 훈련을 받았을 라이언은 매번 실패한 시뮬레이션도 있었을 만큼 우주에 익숙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사고가 일어나면 대처할 순발력이 부족하다는 뜻이었고, 자신감 역시 없는 듯 보였다. 그랬기 때문에 위성의 잔해가 그들을 덮쳤을 때 라이언이 멀리 떨어져 나가게 된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사고가 그녀를 더욱 위태로운 상황에 몰아넣어 누군가가 자신을 구하러 와주기만을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 상황을 통해 라이언이 익숙하지 않은 우주라는 미지의 공간에 대한 중압감에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언보다 우주에 훨씬 익숙한 맷이 그녀를 찾아내 한시름 놓긴 했어도 또 다른 위기가 그녀의 생존을 갉아먹었다.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라이언을 진정시키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하는 맷의 물음 속에서 우주로 오기 전 그녀의 삶이 어땠는지 알 수 있었다. 놀다가 사고로 머리를 다쳐 허무하게 죽은 딸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이전에는 딸이 있어서 기쁨으로 충만한 삶이었을 테지만, 딸을 잃은 후에 라이언은 모든 것을 잃은 삶이나 마찬가지였다. 살고 있지만 진짜로 살아있다고 할 수 없는 삶이었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머나먼 우주에서 맞이한 사고로 라이언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됐다. 외따로 떨어져 나간 이후 살기 위해 통신을 하며 맷이 구하러 왔을 때도 안도했지만, 딸의 기억이 떠오른 후에는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당연히 맷과 함께 지구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었는데, 우주에 적응된 맷이 자신의 삶을 구하기보다 우주 초짜인 라이언에게 양보하는 결단을 내렸다.
지구에 자신을 그리워할 사람이 없고, 아직까지 적응하지 못해 두렵기만 한 우주에서 생존 가능성이 더 높은 사람의 목숨으로 얻은 삶이었다. 그 삶이 버거울 게 당연했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막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됐으니 살 방법을 강구해야 했는데, 그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머나먼 우주에서 홀로,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알게 되자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단념하게 된다. 여기서 살아남겠다는 결심보다 포기가 훨씬 쉬웠다.
그런데 이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당연히 죽었을 거라 예상한 맷이 라이언이 탄 우주선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며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사실 이 부분을 보면서 저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우주에 대해 잘 모르긴 해도 에어로크가 없는 소형 탈출선 같은 곳에 있는데 바깥에서 그렇게 막 문을 열고 들어오면 안 된다는 사실을 여러 영화를 통해 학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맷은 우주복에 헬멧도 쓰고 있었고 내부에 있던 라이언은 헬멧을 착용하고 있지 않았기에 더욱 기겁했다. 근데 예상외로 별일이 일어나지 않아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다른 생존 영화에서도 몇 번 본 장치가 반전으로 깜짝 등장했다. 라이언은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그 의지가 환각으로 발현되어 라이언을 죽음에서 삶으로 이끌었다.
딸을 잃은 후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던 라이언에게 그런 삶이라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가볼 수 없는 우주에서 외로이 생을 마감하기보다는 아픈 기억을 되새기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더라도 지구에서 발을 딛고 사는 것이 훨씬 가치가 있다는 뜻이었다.

7년 전에 개봉한 이 영화를 왜 극장에서 안 봤는지 모르겠다. 우주가 배경인 영화에 관심이 많고, 또 좋아하는 편이라 개봉했을 때 봤어야 했는데 무슨 이유로 보지 않았는지 과거의 나에게 궁금하다. 영화가 시작했을 때부터 이 영화는 100% 아이맥스 용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아쉬워하며 작은 화면에 만족해야 했다.

9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가볼 수 없는 우주를 보여주며 시각적인 즐거움을 줬고, 몇 번이고 위기에 처하는 스릴 역시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통찰도 있었다. 얼굴이 등장하는 배우는 두 사람뿐이고 목소리 연기까지 합하면 총 6명이 출연해 소박한 매력 안에 깊은 의미를 담아 좋았던 영화였다.

영화 그래비티(Gravity,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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