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리뷰


부산에서 쓰나미가 반복적으로 일어난 이후의 2063년은 가난한 사람들이 더 살기 힘들어진 시대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시간 여행을 부자들 대신 떠난다. 있는 자들의 사소한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많은 돈을 받고 과거로 떠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간 여행 도중에 사망했다. 하지만 목적을 이루고 살아돌아온다면 약속한 금액을 전부 받을 수 있었다.

고아원에서 자라 성인이 됐을 때부터 식당 주방장 보조로 일하는 40대 중반의 이우환은 사장이 오래전에 맛본 곰탕 비법을 배우기 위해 과거로 떠나게 됐다. 부양할 가족이 없는 우환은 이 일에 제격이었다. 13명이 함께 배를 타고 떠나가는 도중에 11명이 사망했고, 우환과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김화영만 살아남아 2019년 부산에 도착했다. 그려준 약도로 “부산국밥”을 찾아 곰탕 맛을 본 우환은 비법을 꼭 배워서 살던 곳으로 돌아가 주방장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교실에서 남학생들이 싸우던 와중에 어떤 남자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 남자는 어디서 걸어들어온 흔적이 없이 말 그대로 짠 하고 나타난 사람이었다. 그 남자는 옆구리가 원형으로 파여 안에 들어있어야 할 장기가 바깥으로 쏟아져 나와 엄청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 남자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남학생 이순희가 용의자로 몰려 경찰서에 잡혀간다.


남자는 두고 온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두고 온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앞으로의 시간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시간 속에서 가능할지도 모르는 행복에 대해서 생각했다.
(……중략)
남자는 왜 이곳에서 살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의심했다.
남자는 왜 자신이 행복해지면 안 되는지, 의심했다. 남자는 왜 여기서 흐르는 시간이 자신의 현재가 되면 안 되는지, 의심했다. 1권 p.301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육류가 사라진 시대에 사장이 원하는 곰탕 비법을 전수받겠다고 목숨을 걸고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 상황이 뭔가 씁쓸했다. 얼마나 많은 돈을 주길래 생명까지 담보로 잡혀야 하나 싶었다. 우환은 곰탕이 목적이었고, 이후에 등장한 누군가는 이제는 생산되지 않는 라면이 목적이었다. 가난한 자들은 더 살기 힘들어진 미래가 그들을 사지로 몰고 있었다.

소 하찮은 이유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 우환이 찾아가 전수받아야 될 가게가 이후 일어날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된다. 날 때부터 고아원에서 살았던 우환이 부모에 대해 유일하게 알고 있는 건 아버지 이순희, 어머니 유강희라는 이름뿐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부산국밥은 이순희의 아버지, 그러니까 우환의 할아버지 종인이 하는 식당이었고, 아버지인 순희는 사고만 치고 다니는 19살의 고등학생이었으며, 순희의 여자친구는 당연히 강희였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 우환은 미래에 대해 발설하면 절대 안 된다는 시간 여행 규칙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을 모른 척 헤어지게 하려는 수작으로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우환에게 그들은 자신을 버린 부모였지만, 현재의 순희와 강희는 날티가 나고 사고를 좀 칠 뿐 19살 또래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는 걸 깨달아갔다. 처음엔 버릇없게 굴던 아이들도 우환과 가까워지면서 순희의 아버지 종인보다 친밀한 사이가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과거의 어린 부모와 미래의 늙은 아들의 기묘한 관계였다. 그리고 그 관계에서 생전 느껴보지 못한 따스함을 알게 된 우환이 이 삶에 미련을 가지게 된다. 그쪽 삶에는 우환을 반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드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시간 여행을 주관하는 여행사 입장에서는 당연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 여행을 한 사람들은 이쪽에서는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우리는 조금 더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이곳에 살기 위해, 그곳에서보다 더,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2권 p.240

이런 와중에 신체가 뚫려 나타난 남자의 사건을 형사 양창근과 강도영이 수사한다. 그러면서 상상도 못했던 시간 여행에 대한 비밀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부동산 중개인 박종대가 나타나고, 우환과 함께 살아남았던 화영이 과거로 온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신비한 능력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면서 누군가를 위협하게 된다.
시간 여행에 대한 거대한 비밀이 조금씩 밝혀지는데 어찌나 궁금하게 만들었는지 안달을 하며 읽었다. 1권 말미에 화영이 죽여야 할 사람에 대한 실체가 밝혀져서 소름이 쫙 돋았다. 이후 2권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던 박종대의 야심이 거침없었는데 또 그게 굉장히 정교해서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시간 여행자인 우환을 비롯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고등학생인 순희까지 엮여 스릴에 스릴을 더했다. 이들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맛이란 건 좋은 기억 같은 건가 보다. 잊을 수 없는 맛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인가 보다. 1권 p.14

러다 모든 게 끝나고 마치 에필로그처럼 이어진 그들의 모습을 보며 감탄을 하다가 마지막엔 울컥 눈물이 나고 말았다. 과거로 돌아갔을 때 무언가를 바꾸려 해서는 안 됐는데, 그들이 나의 부모, 할아버지라고 하는데 어찌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있었을까 싶다. 우환의 선택이 엄청나게 이기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지만, 평생 가져보지 못했던 행복을 과거에 와서야 손에 넣었다고 생각한 그의 마음이 너무나도 이해가 됐다.
그리고 사건을 수사하면서 당최 믿을 수 없던 사실을 하나씩 알아가다 마침내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달은 형사의 따스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고, 그에 대한 또 다른 진실이 밝혀진 부분에서 놀라고 말았다. 또한 화영을 사주한 자의 정체도 이렇게 연결되나 싶어 충격을 받았다.
앞서 흘려놓은 단서들이 1권 후반부터 회수되면서 마지막엔 다 밝혀지는데 계속 놀라면서 읽었다. 설계가 정말 정교한 소설이었다. 잘 설계된 구성뿐만이 아니라 쫓고 쫓기는 부분이 많이 등장해 스릴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읽다가 소리 내서 웃었을 정도로 코믹한 포인트로 즐겁게 했고, 마지막엔 진한 감동까지 줬다.

보통 재미있게 읽은 책들은 영화화가 되기를 바라는데, 이 소설은 짧은 영화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방대한 내용이라 드라마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드라마를 보면 헤어 나오기 힘들 만큼 푹 빠지고 매회를 안달하며 기다리기 싫어서 잘 안 보는 편이지만, 이 소설을 드라마화한다면 100% 볼 의향이 있다.

소설을 읽고 웬만하면 재미있다고 잘 안 하는 편인데 진짜 재미있게 읽었다. 재미있어서 빨리 읽었지만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아까웠을 만큼 진짜 재미있었다. 이 책을 왜 이제야 읽었을까 싶으면서 이제라도 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소설을 읽어서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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